한 시대를 빛낸 작곡가들의 마지막을 기리는 ‘백조의 노래’, 그 일곱 번째 작품은 바로 지난 시간 만나본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 1809~1847)의 사랑하는 누이이자, 당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외부적인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해 더욱 안타까운 음악가 파니 멘델스존(Fanny Cacilie Mendelssohn-Hensel, 1805~1847)의 <피아노 트리오 라단조, 작품번호 11번(Piano Trio in d minor, Op.11)>입니다.
파니 멘델스존은 독일의 유태인 은행가 집안의 4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자신보다 4살 어렸던 바로 아래의 동생 펠릭스와 함께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며 뛰어난 재능을 뽐내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13세에 평균 연주 시간만 4시간이 넘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Das wohltemperierte Klavier, BWV.846-893)>을 전부 암보로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펠릭스가 자신의 누나였던 파니가 훨씬 재능이 뛰어난 음악가였다는 말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펠릭스의 음악가로서의 성공과 사회적인 시선 등을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작품을 출판하는 것은 물론 공개적인 연주도 자제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멘델스존 남매의 조부는 바로 유명한 18세기 독일 계몽주의 철학자였던 모세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 1729~1786)이었으며, 유대교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하스칼라(Haskala)', 즉 유대인 계몽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끊임없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거나 반박을 하라는 공격을 받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봤던 멘델스존 남매의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자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을 멘델스존 바르톨디로 바꿨습니다.
중산층 여성이 전문 음악가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 그리고 매우 가부장적인 환경, 거기다 유대인이라는 사회적인 은밀한 멸시 속에서도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으려 했던 파니 멘델스존은 “우리 모두가 증오하는 이름인 바르톨디"란 말을 남길 정도로 동생과 음악적인 취향 뿐만 아니라 삶의 결도 닮아있습니다. 그녀 역시 평생 400곡이 넘는 작품을 작곡하였음에도 사망하기 한 해 전인 1846년에야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였습니다.
펠릭스 멘델스존은 누나의 작곡을 지지하였으며 함께 피아노 작곡 형식인 '무언가(Lieder ohne Worte/Songs without Words)'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니의 대외적인 활동을 지지할 수 없었던 펠릭스는 자신이 1827년에 출판한 ‘12개의 노래, 작품번호 8번’과 1830년에 출판한 ‘12개의 노래, 작품번호 9번’에 각각 3곡씩을 파니가 작곡한 가곡으로 채워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파니는 1829년, 화가였던 빌헬름 헨젤(Wilhelm Hensel, 1794~1861)과 결혼하여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한 가정의 아내로서의 역할을 묵묵하게 수행하였습니다.
남편인 헨젤은 파니의 작품활동을 지지하였던 것은 물론, 펠릭스와 달리 그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들을 작곡하는 것을 권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남편의 지지로 파니는 1832년 런던의 음악 잡지인 '하모니콘(The Harmonicon)'에 영국의 시인 월터 스콧의 시를 가사로 한 가곡 <아베 마리아(Ave Maria)>를 자신의 이름으로 처음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점차 독립적인 음악 활동을 펼치고자 막 날개를 펼치던 때에 파니 멘델스존은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동생의 작품인 칸타타 <첫 번째 발푸르기스의 밤>과 자신이 1843년에 작곡한 솔리스트와 여성합창, 그리고 피아노를 위한 <파우스트 2부의 장면(Szene aus Faust Ⅱ)>의 공연을 위해 직접 피아노를 치며 리허설을 진행하던 중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 세상을 떠났는데, 이는 가족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생 펠릭스도 6개월 뒤 같은 증상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렇게 점차 다른 음악가들과의 교류를 하며 점차 자신감을 키워가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파니 멘델스존이기에,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연구가 20세기 후반에서야 시작되었을 정도로 많은 곡들이 아직까지 세상의 빛을 보고 있지 않은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녀는 사망 직전까지 꾸준하게 작곡을 하였으며, 그녀가 사망하기 전날에는 가곡 <산에서 느끼는 행복(Bergelust)>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유작은 1846년부터 1847년까지 대표적인 여류 음악가였던 클라라 슈만을 여러 차례 만나며 작곡하여 여동생 레베카 멘델스존(Rebecka Henriette Mendelssohn-Bartholdy, 1811~1858)의 생일 선물로 헌정한 <피아노 트리오 라단조, 작품번호 11번>입니다. 1악장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Allegro molto vivace)’, 2악장 ‘안단테 에스프레시보(Andante espressivo)’, 3악장 ‘노래. 알레그레토(Lied. Allegretto)’, 4악장 ‘피날레. 알레그레토 모데라토(Finale. Allegretto moderato)’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그녀가 사망하고 3년 뒤인 1850년에 남편 빌헬름 헨젤의 노력으로 출판 되었습니다.
파니 멘델스존의 작품들 중 가장 정교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곡은 사회적 지위를 집어 던지고 예술가로서 대외적인 활동을 시작하려던 꽃이 막 피어나기 일보직전의 꽃봉오리와 같은 그녀의 삶이 날개짓을 하기도 전에 저문 것을 더욱 안타깝게 여길 수밖에 없는, 매우 서글프면서도 아름다운 ‘백조의 노래’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제12회 예루살렘 국제 실내악 페스티벌에서 연주된 파니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 라단조, 작품번호 11번>
박소현 작가•바이올린/비올라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