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 기조 속 정치 불확실성 겹쳐
한은 “물가 최대 0.1%P 끌어올려
1월에도 물가 상승세 지속 전망”
“경기 부양 재정정책 필요” 지적
작년 12월 한 달 사이 원화 가치가 미국 달러에 비해 5% 넘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국가 중 러시아에 이어 하락 폭이 두 번째로 컸다. 강(强)달러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친 점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은행은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인해 진정세를 보여 온 물가가 다시 상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실이 한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30일 미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5.3% 하락했다. 주요 20개국(G20) 통화 중 원화보다 하락세가 큰 통화는 전시 상태인 러시아의 루블화(―6.4%)뿐이었다. 일본(―4.7%), 중국(―0.8%), 인도(―1.3%) 등 아시아 주변국들과 비교하면 원화의 하락은 더욱 두드러진다. 원화 값이 하락한 근본적인 배경에는 강달러 기조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정책,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가능성 등으로 한국을 비롯한 주요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가치는 하락세를 보여왔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계엄 및 탄핵 정국의 장기화라는 정치 리스크까지 겹쳤다는 점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3일 주간 거래(오후 3시 30분 기준)를 1402.9원으로 마쳤지만, 갑작스럽게 한밤중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야간 거래에서 장중 1441.0원까지 급등했다.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의 헌법재판관 불임명 등으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된 12월 27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6.7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30일에는 1472.5원으로 마감했는데, 이는 1997년 말(1695.0원)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10일에도 원-달러 환율은 1465.0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으나 11일 야간 거래에서는 1472.0원까지 치솟았다. 미국이 발표한 고용 지표가 호조세를 보이면서,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지리란 전망에 더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한은은 지난해 12월부터 치솟은 원-달러 환율이 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물가 상승세가 제법 진정됐다는 판단 때문에 지난해 10, 11월 기준금리를 두 달 연속 인하할 수 있었는데 환율 때문에 다시 물가가 꿈틀거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은은 임 의원실에 “작년 11월 중순 이후의 환율 상승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상승률을 0.05∼0.10%포인트 높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번 달 CPI 상승률도 조금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 달 남짓의 환율 불안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최대 0.1% 끌어올렸으며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수 있음을 한은이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 언급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1.5%) 대비 0.4%포인트 높아진 1.9%였다.
전문가들은 정국 불안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 불가피한 만큼 경제 충격을 줄이고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달러 환율이 높아지면 수입 물가와 소비자 물가가 올라 가계의 실질소득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당장 통화정책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기 부양을 위해선 정부의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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