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분류기준 신설 배경
중형차 쏠림 심한 전기차시장
신차출시 유도해 선택권 강화
韓시장 실내공간·승차감 중시
축간거리 길게 가는 경향 있어
3050㎜넘는 기아 EV9등 수혜
수입차 주요모델은 ‘짧은허리’
강화된 중형차 전비기준 적용
친환경차 문턱 높아지며 불리
정부가 전기승용차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한 표면적인 이유는 전비(전기차 연비)가 우수한 고효율 친환경 차량 개발을 촉진하고, 국내 시장에 출시되는 차종을 다양화하기 위해서다.
친환경 전기차 판매 시 자동차 업체들은 개별소비세와 교육세, 취득세 감면과 같은 소비자들이 받을 수 있는 세제 혜택을 강조하기 때문에 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을 맞출 유인이 크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고효율 전기차의 에너지소비효율 기술 기준이 시장 수준 대비 정체돼 있어, 기술개발 목표 부여 등 지원 제도로서의 역할이 약화된 측면이 있다”며 “시장 상황을 반영해 고효율 차량을 제대로 구분하기 위한 기준 합리화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대형 전기승용차에 대한 전비 규제 요건을 완화했다. 상대적으로 내연기관차 대비 다양성이 떨어지는 전기차 시장을 개편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 대형 전기차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시장에 내놓으라는 시그널인 셈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각에서 정부의 친환경차 강화 정책이 후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규제 완화에 대한 고심이 컸다”며 “전기차 캐즘 극복을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선택권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중형 전기차에 적용하는 친환경 규제 요건을 강화한 데는 고효율의 전기차를 구분하는 기준이 오래돼 변별력이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한편 자동차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국내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일종의 ‘무역기술장벽’을 세운 것이라는 해석을 더하고 있다. 수입차들은 하나의 설계로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때문에 한국의 친환경 규제에 맞춰 차량을 제작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 이 같은 해석에 힘을 싣는다.
새 전기승용차 친환경 인증 기준에 따르면 수입차 대비 상대적으로 긴 축간거리를 가진 신형 국산 전기차가 수혜를 입게 된다. 올해 출시되는 현대차의 아이오닉9과 기아의 EV9은 축간거리가 3050㎜ 이상으로, 새로 바뀐 규정에 따라 대형 전기차로 분류될 예정이다. 종전보다 완화된 전비 규제 요건을 받게 되면 구매자가 세제 혜택을 볼 수 있다.
반면 국내 수입 전기승용차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을 마주하게 됐다. 축간거리가 짧아 중형 전기차로 분류되는 일부 수입 전기차들은 강화된 에너지소비효율에 맞춰 전비가 우수한 차량을 내놓든지, 아니면 넉넉한 축간거리를 가진 차량을 출시하든지 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다.
2023년 5월 친환경 인증을 받은 테슬라의 모델X Plaid는 축간거리가 2965㎜인데 에너지소비효율이 3.8㎞/kWh로 새 기준에 따라 친환경차 지위가 박탈될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포르쉐 마칸 터보 역시 축간거리가 2807㎜로 새 친환경차 인증 기준에 따라 중형차로 분류되는데 에너지소비효율은 4.0㎞/kWh여서, 규제 강회되기 전이라면 친환경차로 인정받지만 바뀐 규정으로는 친환경차에서 제외된다.
국내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 비야디(BYD) 역시 축간거리가 2920㎜다. 아우디가 2025년 상반기에 국내 출시 예정인 ‘더 뉴 아우디 Q6 e-트론’도 축간거리가 2889㎜다.
친환경차 제도는 에너지소비효율과 1회 충전 주행거리, 최고 속도, 공칭전압 등 기술 요건을 충족하는 친환경차를 대상으로 세제 감면 등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제도다. 친환경 전기차의 경우 개별소득세는 최대 300만원까지 감면 혜택이 주어지고, 교육세는 90만원, 취득세는 140만원 한도 내에서 감면받을 수 있다. 공영주차장 50% 할인,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등의 혜택도 더해진다.
이번 제도 개편에서 정부는 전기버스에 대한 친환경 인증 문턱도 대폭 높였다. 전기버스는 길이에 상관없이 에너지소비효율이 1.0㎞/kWh 이상만 되면 모두 친환경 차량으로 인정받았는데, 앞으로는 길이에 따라 5개로 세분화된다. 이중 9m 이상 대형급 버스의 경우 에너지소비효율 기준이 2.57㎞/kWh 이상으로 현행보다 2.5배 이상 효율을 높여야 한다.
정부의 조치를 두고 중국산 전기버스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2023년 중국산 중대형 전기버스는 총 1239대가 판매대 처음으로 국산 판매량(1139대)을 추월하면서 점유율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완성차 업체들은 친환경차 인증을 위해 지금보다 전비를 크게 높이든지, 축간거리가 넉넉한 차량을 제조하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특히 차량 제원을 국내 기준에 따라 조정하기 어려운 수입차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축간거리
▷ 자동차의 앞바퀴 중심과 뒷바퀴 중심 사이의 거리를 말한다. 축간거리가 길면 직진성과 주행 안전성, 승차감이 좋다. 당연히 실내 공간도 넓다. 다만 곡선 구간 주행 시 회전반경이 커져 움직임이 둔해지는 단점도 있다. 또 과속방지턱이나 내리막길에서 차 하부가 바닥에 긁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