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 드론에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북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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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도 안 돼 파병 병력 4분의 1 잃어… ‘FPV 드론’ 종횡무진 활약

인류 역사는 곧 전쟁 역사였다. 오랫동안 인간은 다양한 신무기를 만드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특히나 ‘전쟁의 세기’인 20세기에 세계 각국은 군사력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군사 과학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군사기술이 민간으로 파급돼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는 ‘스핀 온(spin on)’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런데 냉전이 끝나고 여러 나라가 군비 축소에 나선 1990년대∼2000년대에는 정반대 상황이 연출됐다. 민간기업이 이익 창출을 위해 경쟁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군사 분야로 파급돼 전쟁 양상을 바꾸는 ‘스핀 오프(Spin off)’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용되는 1인칭 시점(First Person View·FPV) 드론은 스핀 오프 현상의 대표 사례다.

우크라이나군이 드론을 정비하고 있다. [뉴시스]

우크라이나군이 드론을 정비하고 있다. [뉴시스]
100만 원짜리 드론에 러시아 기갑부대 궤멸

FPV 드론은 말 그대로 1인칭 시점으로 운용되는 드론이다. 카메라 등 센서로 촬영한 시각 정보가 컨트롤러에 무선 전송되면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드론을 조종한다. 원래 이런 형태의 드론은 취미나 촬영용으로 개발됐다. 당장 시중에 저렴한 기성품이 널려 있다. 온라인 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부품으로 소비자가 직접 제작하기도 쉽다. 3차원(3D) 공간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는 FPV 드론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치명적인 살상 병기로 거듭나고 있다.

FPV 드론의 무기로서 최대 강점은 역시 제작이 쉽고 저렴하다는 것이다. 가령 100만~200만 원이면 살 수 있는 기성품 FPV 드론의 활용법을 살펴보자. 이 정도 스펙의 드론만 해도 카메라와 센서는 물론 RPG 로켓 탄두, 수류탄 같은 살상용 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은 수백만 원가량 하는 3D 프린터로 동체와 프로펠러 등 부품을 직접 만들고 있다. 자체 수급이 어려운 모터, 배터리, 비행 제어칩, 카메라 같은 부품은 온라인에서 구매해 100만 원가량으로 드론을 제작하는 식이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에 화력을 퍼부을 때 포탄 대신 드론을 날려 공격하는 게 일상화됐다. 이 같은 드론 사용의 확대는 전쟁 양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크라이나군 공격에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뉴시스]

우크라이나군 공격에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뉴시스]
‌개전 초 러시아는 압도적 물량의 기갑부대를 여러 방향에서 동시 투입해 파죽지세의 진격 속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들 기갑부대는 매복한 우크라이나 보병들이 쏘는 휴대용 대전차 무기에 큰 피해를 봤다. 이 과정에서 재블린, NLAW, AT-4 등 대전차 무기가 맹위를 떨쳤지만 이 또한 만능은 아니었다. 이들 무기는 직사화기에 가깝다. 따라서 적 전차·장갑차가 똑바로 보이는 직가시(直可視) 포인트에 자리 잡아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로켓무기의 특성상 발사 시 생기는 후폭풍 탓에 밀폐 공간에서는 사격이 불가능하다. 이런 약점 때문에 우크라이나군이 휴대용 대전차 무기를 쏘려다가 역으로 러시아군에 당한 사례도 여러 번 있었다.‘중계 드론’으로 수십㎞ 밖 조종 가능

반면 FPV 드론은 기존 대전차 무기의 단점을 커버할 수 있다. 전파만 통한다면 어디서든 드론 조작이 가능하다. 전술상 유리한 높은 고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특히 전기 배터리 방식의 드론은 소음도 작아서 가까이 접근하기 전까지 적이 알아채기 어렵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군의 드론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전쟁 초반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한 FPV 드론은 민간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기성품 위주였다. 민수용 드론의 한계 탓에 체공 시간이 짧고 탑재 중량도 빈약했다. 전쟁이 장기화하자 우크라이나군은 여러 부품을 조합해 드론의 체공 시간과 탑재 중량을 늘린 데 이어, 통신장비를 장착한 ‘중계 드론’까지 만들어냈다. 이 같은 기술 개발로 1~2㎞에 불과하던 드론 제어 전파 송수신 거리가 수십㎞까지 늘어났다. 최근 우크라이나군 FPV 드론의 라인업을 보면 박격포·RPG·수류탄 등 폭발물을 부착한 기본형부터 10~20발의 박격포탄으로 적진을 폭격하는 일명 ‘바바 야가’(baba yaga: 러시아 등 슬라브족 설화에 등장하는 마녀) 드론까지 다양하다.

2024년은 우크라이나군의 FPV 드론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해였다. 2023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 정부의 한 해 드론 생산 목표치는 100만 대였다. 하지만 2024년 한 해 동안 우크라이나는 서방세계의 자금 지원에 힘입어 200만 대 넘는 FPV 드론을 만들어 일선에 배치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사용이 크게 늘면서 러시아군 손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미국전쟁연구소(ISW)는 지난해 말 낸 보고서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 1㎢를 점령할 때마다 사상자 102명을 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드론 공격에 맞서 전차·장갑차에 그물이나 합판을 두르는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으로 전장에서 러시아군 전차·장갑차는 씨가 마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최근 러시아군은 레저용 경량 고기동 차량(ATV), 오토바이, 승용차는 물론, 심지어 킥보드를 타고 돌격하는 실정이다.

원래 러시아군은 거의 모든 병력을 차량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옛 소련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기동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군 차량화에 나선 이래 이어져온 전통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 육군의 경우 ‘보병부대’는 없고 궤도형 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부대’나 차륜형장갑차를 갖춘 ‘차량화부대’가 대부분이다. 이랬던 러시아군이 지금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보병 홀로 돌격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전차·장갑차는 고사하고 차량 자체가 부족해진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군이 ‘총알받이’로 파병된 북한군에 기갑 장비를 내줄 리 만무하다.

북한군의 ‘알보병’ 돌격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병사가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접근하자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특수작전군 텔레그램 캡처]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병사가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접근하자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특수작전군 텔레그램 캡처]
이 때문에 최근 북한군은 쿠르스크 전선에서 ‘알보병’으로 돌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북한군 보병 1명을 잡는 데도 FPV 드론을 사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FPV 드론은 전차를 잡는 RPG 탄두나 박격포탄, 이에 준하는 고성능 폭발물을 탑재한 상황이다. 필자는 매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황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면서 현지로부터 다양한 영상과 이미지를 받아 보고 있다. 그중 드론에 피격된 북한군 시신은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훼손돼 있었다.

지난해 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벌어진 일대 사건도 FPV 드론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러시아군은 크리스마스 직전인 12월 20∼23일(현지 시간) 쿠르스크 돌출부 서부의 젤레니 슐라흐 마을 주변에서 파상공세를 감행했다. 러시아 제155근위해군육전여단 병력이 동원된 당시 공세에서 북한군은 아무런 화력·기동장비 지원 없이 눈 덮인 들판을 뛰어서 돌격했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군은 FPV 드론 공격으로 북한군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당시 방어 작전에 투입된 우크라이나군 제8특수목적연대는 전투 직후 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이 부대 드론 운용병 1명이 사흘 동안 북한군 77명을 사살하고 40여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는 내용이다. 이 병사는 북한군 110여 명을 살상한 것 외에도 장갑차 1대와 버기카 3대, 차량 12대를 파괴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전투 영상 속 북한군은 드론 공격에 그야말로 속절없이 당한다. 작은 새 정도 크기인 드론은 아주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존재 자체를 알아채기 힘든 데다, 총으로 격추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한 드론 공장에서 근로자가 장거리 정찰 드론을 조립하고 있다. [뉴시스]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한 드론 공장에서 근로자가 장거리 정찰 드론을 조립하고 있다. [뉴시스]
‌쿠르스크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은 감시용 드론으로 전장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감시 도중 사람 움직임이 포착되면 다량의 FPV 드론을 보내는 방식으로 북한군을 사냥한다. 먼저 공격개시선에 집결한 북한군을 대형 드론으로 폭격하고, 들판을 달리는 병력은 소형 FPV 드론으로 ‘원샷-원킬’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북한군은 지난해 12월 초 쿠르스크 전선에 본격 투입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파병 병력 4분의 1을 잃었다.

北 부상병 대부분은 드론 공격 피해자

현재 러시아군은 쿠르스크 시내와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병원 몇 곳을 북한군 전용 치료 시설로 지정하고 부상병을 집중 수용하고 있다. 이 병원에서 식별된 북한군 부상병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경미한 파편상 환자 혹은 팔다리가 잘린 중상자다. 전자는 주로 공격개시선에 있다가 드론 폭격에 당한 경우이고, 후자는 팔이나 다리에 직접 드론 공격을 맞은 사례다. 그중 파편상을 입은 경상자는 간단한 치료 후 다시 전장으로 투입된다고 한다. 파병 북한군은 대부분 쿠르스크에서 전사하거나 팔다리가 잘리는 불구가 돼야만 ‘드론 지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셈이다. 드론으로 북한군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는데도 러시아와 북한 당국 모두 이를 해결하는 데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72호에 실렸습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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