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양환]꿈꾸던 미래가 되었나요

5 days ago 16

정양환 문화부장 “전 당신들의 적(your enemy)이 아니에요.” 최근 미국 CNN방송 등과 인터뷰를 가진 배우 ‘틸리 노우드(Tilly Norwood)’는 놀랍고도 섬뜩했다. 살포시 웃으며 다정함을 드러낸 여배우의 미소는 화사했지만, 실존 인물이 아니다. 영국 제작사가 만든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AI) 배우. 그는 세간의 우려를 의식한 듯 “어떤 연기자도 대체할 생각이 없다. 나의 길을 가겠다”고도 했다. 높은 관심만큼 반발도 뜨거웠다. 당연했다. 여전히 예술의 본질은 ‘인간의 고뇌와 숨결’에 있다고 믿으니까. 미국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은 그를 “배우라고도 부르지 말라”며 “컴퓨터로 만든 ‘합성 로봇’일 뿐”이라 폄하했다. 하지만 이 AI 배우는 조만간 장편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할 예정이다.알고리즘이 빚어낸 달콤함 AI의 문화계 침공은 노우드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자니아 모네(Xania Monet)란 ‘AI 아티스트’가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다. 노래 ‘How Was I Supposed to Know’가 대박 나자 영입 경쟁도 치열했다. 결국 음반사 할우드미디어가 300만 달러(약 40억 원)나 주고 계약을 맺었다. 이어 역시 AI 가수인 브레이킹 러스트의 곡 ‘Walk My Walk’는 빌보드 컨트리 분야 차트 1위에 올랐다. 한국도 엇비슷하다. 이달 음원 순위 2등까지 오른 노래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는 AI 음원생성 프로그램 수노(SUNO)로 만든 가상의 목소리. 서정적인 노랫말에 아로새겨진 음색은, 소주를 10년쯤 들이켠 듯하단 호평이 나온다. 가수 이름 ‘머무르’도 “음악에 머무르며 위로를 얻는다”는 뜻이긴 하나, 실상은 실리콘 칩이 직조해낸 기계음이다. 문제는 이런 범람이 문화·예술 생태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단 점이다. 따지고 보면 AI가 이런 능력을 갖추게 된 건, 인류가 힘겹게 쌓아온 창작물을 휘뚜루마뚜루 학습한 덕이다. 근데 이 흐름이 대세가 되면 우리가 흘린 땀방울의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AFP통신은 스트리밍서비스 디저를 인용해 “이미 청자들의 약 97%는 AI와 사람의 음악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했다.인간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어차피 기술의 진보는 멈출 수 없다. 영화계나 가요계도 되돌릴 수 없는 해일에 뛰어들었다. 게다가 대중 반응을 보면, 세상은 가짜의 손을 잡고 열광할 준비를 마쳤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AI가 만든 데이터 환각(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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