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적막한 사무실에 조만간 다시 활기가 돌 가능성이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기자회견에서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 불행을 안 당하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며 특감 임명을 지시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때 청진동 사무실에서 최고 권력자 주변을 감시했던 이 전 특감과 차정현 전 특감 직무대행에게 특감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물었다.
“중립적 인사 임명하고 신분 보장해야”
먼저 이 전 특감은 누굴 임명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화에서 “여당에 가까운 사람이면 ‘대통령을 봐주려 하느냐’는 말이 나오고 야당 성향이 강하면 대통령이 임명을 꺼릴 것”이라며 “국회가 후보자 3명을 추천할 때부터 정치색이 없고 중립적이면서 능력 있는 인물을 골라야 한다”고 했다.2015년의 경우 여당, 야당, 대한변협이 후보자를 한 명씩 추천했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당이 추천한 이 전 특감을 택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여야의 적격 의견을 받았음에도 임기 초반부터 “허수아비 노릇 하는 것 아니냐”는 야당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두 번째로 특감과 특감실 직원들의 신분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특감은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인척, 대통령실의 수석비서관 이상 공직자를 감찰한다. 살아 있는 권력을 감시하는 만큼 법적으로 신분을 보장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 전 특감은 당시 실세였던 우병우 민정수석을 감찰하고 국정농단 사건의 단초가 됐던 미르재단을 내사하면서 권력의 눈 밖에 났다. ‘감찰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며 되치기당했고, 결국 임기 절반만 채운 채 떠밀려 나갔다. 남아 있던 차 전 직무대행 등 특감실 직원들에게는 당연퇴직 공문이 날아왔다. 차 전 직무대행에게 당시 상황을 묻자 “현재 공수처 부장검사라 답변이 어렵다. 2년 전 펴낸 책을 참고해 달라”고 했다. 책에서 그는 “특감실은 매일 고립되고 고사되는 중이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건물에서 비용을 대납하며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고 돌이켰다. 또 “(특감은) 조직이 해체되거나, 부당하게 공격받거나, 직을 잃는 일 없이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특감 내치거나 임명 안 한 대통령 ‘잔혹사’
세 번째로 검경과 감사원, 공수처 등 기존 조직과 원활한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감은 정원 28명으로 검경은 물론 감사원(1128명), 공수처(85명)보다도 규모가 작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권한도 없어 기관 공조가 필수적이지만 대통령 주변을 건드리다 보니 정부 자료를 받는 게 매우 어렵다. 이 전 특감이 우 전 수석 감찰 당시 “경찰에 자료를 달라고 하니 하늘만 보면서 딴소리하더라”라고 하소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감 임명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라 대통령과 국회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법적 의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특감을 내쳤고 문재인 윤석열 전 대통령은 특감을 임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 대통령 모두 본인이나 가족이 수사 대상이 됐다.
이 전 특감은 “윤 전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를 컨트롤할 자신이 없어 특감에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문 전 대통령의 경우 임기 초 특감을 임명했다면 퇴임 후 사위의 이스타 특혜 채용 의혹으로 고초를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반복되는 대통령 잔혹사를 안타까워했다. 퇴임 후 본인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대통령 주변을 철저히 단속할 인물을 특감으로 임명하고 활동을 보장할 것을 이 대통령에게 권하고 싶다.
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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