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총리가 대통령의 ‘참모 중 선임자’를 자처한 것은 자신을 한껏 낮추며 스스로 실무형 총리가 되겠다는 자리매김으로 들린다. 후보자 시절부터 “총리는 대통령의 국정 방향을 풀어가는 정부의 참모장이자 국민에게 성실히 설명하는 대국민 참모장”이라고 했던 김 총리다. 다만 그간 인준 과정을 거치면서 ‘대국민 참모장’보다 ‘대통령 참모장’ 쪽에 더 가까워진 듯하다. 소명도 해명도 부족한 각종 의혹에도 이 대통령의 전폭적 신임 아래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김 총리로선 그만큼 빚을 졌다는 부채감이 클 것이다.
하지만 헌법상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국정의 2인자로서 김 총리가 대통령의 참모에 머무를 수는 없다. 총리는 비록 임명직이긴 하나 대통령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할 법적 권한, 즉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가진 최고위직이다. 그래서 인사와 정책 등 국정 전반에 연대책임을 지고 유사시 대통령을 대신해 그 권한을 행사할 2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총리로서 지나친 자기 낮춤은 국정 성공에도 독(毒)이 될 수 있다.
의회 권력에 이어 행정 권력까지 쥐면서 사실상 견제 세력이 없는 이재명 정권에서 총리의 역할은 더더욱 크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하루가 한 30시간만 되면 어떨까”라며 만기친람의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스피드 속에 가려진 어두운 그늘, 디테일 속에 빠진 국정의 큰 그림을 옆에서 챙겨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전방위 개혁을 내세워 강공 일변도 국정을 펼 때 한덕수 전 총리가 제 역할을 했다면 그런 참혹한 실패는 없었을지 모른다.지금 김 총리에게 이 대통령과의 관계는 당 대표와 수석최고위원 시절과 다르다. 실적과 성과에만 매달리다 놓치는 내실과 함께 협치를 차분히 챙기는 총리, 그리고 필요할 때 과감히 브레이크를 밟는 강단 있는 총리가 돼야 한다. 이 대통령이 김 총리에게 임명장을 준 뒤 “고개 너무 많이 숙이지 마요.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되니까”라고 농담을 했다는데, 그저 웃어넘길 장면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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