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서 유례 찾기 힘든 주담대 직접 규제
자산불평등 키우고, 시장 왜곡 부추길 우려
살고 싶은 주택 부족하면 수요는 이동할 뿐
공급확대-규제개혁 등 균형 잡힌 접근 중요
정부는 부랴부랴 지난달 28일부터 수도권과 규제 지역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했다.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긴급 처방이라지만, 부작용이 우려된다.
먼저 주요 선진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싱가포르, 홍콩 등 부동산 과열을 겪은 선진국들은 모두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시장 기반형 규제를 통해 대출 가능성을 제한할 뿐, 주담대 자체를 제한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대출 자체를 막으면 현금 여력이 충분한 자산가들만 주택을 구매할 수 있게 돼 자산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택정책을 금융정책의 거시건전성 확보라는 목적을 중심으로 접근하되,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을 피한다.
정부가 함께 대책으로 내놓은 LTV 규제 강화 역시 그 효과에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주택시장 규제와 주택공급방식의 방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출 한도를 집값의 70%에서 40%로 줄이면 가계대출은 31% 이상 감소하지만 정작 집값은 오히려 0.005% 올라간다.이는 LTV 규제가 가져오는 메커니즘 때문이다. 대출 한도가 줄어들면 일반 가정들은 ‘소득이 줄어들 때를 대비해 돈을 모아둬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사회 전체적으로 저축이 늘어나면 시중에 돈이 많아져서 금리가 내려간다. 현금 부자들로서는 ‘은행에 돈을 맡겨봤자 이자가 별로 안 된다. 차라리 집을 더 사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LTV 규제가 장기적으로는 집값을 떨어뜨리는 데 미미하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결제은행(BIS)의 연구들도 LTV 제한이 단기적으로는 주택 가격 상승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주로 단기적으로 머문다고 본다.
사실 정부가 주담대를 직접 규제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투기과열지구 내 15억 원 이상 초고가 주택에 대해 주담대를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이 규제가 시행된 지 1년 후인 2020년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년 같은 달 대비 13.1% 상승했다. 그리고 2년째인 2021년 12월 기준으로는 31.6%나 상승했다. 2020∼2021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국에서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일부 강남권과 한강벨트 지역은 신고가 행진이 이어졌고, 특정 지역에서는 고가 현금 매수가 집중됐다. 참고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021년 8월부터 인상하기 시작했다. 지금 시점에서 회상해 보면 2019년 주담대 규제를 시행할 당시 서울에서 15억 원짜리 아파트는 초고가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초고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씁쓸하기까지 하다.이번 ‘주담대 한도 6억 원 제한’ 조치는 문재인 정부의 데자뷔가 될 우려가 있다. 금리는 앞으로 경기 하방 압력에 따라 올 하반기에 인하될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주담대 제한 조치가 금리 인하와 맞물리면서 시장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수도권과 규제 지역의 고가 주택은 사실상 현금 부자들만 거래하는 시장이 될지도 모른다. 이는 자산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고, 부동산 시장을 더 양극화시킬 수 있다. 또한 규제 회피를 위한 거래나 지역 간 풍선효과도 우려된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근본적인 수급 불균형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수요는 다른 지역이나 형태로 이동할 뿐이다.근본적 해법은 안정적인 통화정책 기조하에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데 상당 부분 달렸다. 결국 장기적으로 주택 가격을 안정화하려면 가계대출 규제 강화나 보유세 인상과 같은 수요 억제책보다 주택의 신규 공급을 늘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민간자금이 부동산 및 가계대출 부문에 과도하게 몰려 기술 발전이나 생산 부문으로 흘러가지 않는 점을 정부가 우려한다면, 더더욱 공급 확대에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금리 향방과 변동 추이에 따라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을 균형 있게 수립해야 한다. 주담대 규제는 통제장치로서 일정 부분 의미가 있지만, 주택시장 전반의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 확대, 규제 개혁, 금리 정책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극단적 규제보다는 시장 원리에 기반한 균형 잡힌 접근이 더욱 요구된다.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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