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상훈]은행원의 늦은 출근, 대가는 누가 치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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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장 수도권 전철 4호선 안산역 뒤편에 3, 4층 건물 수십 동이 몰려 있는 단지가 있다. 기름때 묻은 낡은 건물 사이로 쇳가루가 날리는 이곳은 각종 산업용품을 취급하는 안산 유통상가다. 수도권 제조업의 메카인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의 ‘공구함’ 같은 곳이다. 볼트, 케이블, 벨트, 펌프, 베어링, 작업화 등 공장에서 필요한 물품 대부분은 여기서 구할 수 있다. 업종 특성상 대체로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일부 매장은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8시면 단지 전체가 시끌벅적해진다. 낡은 상가 단지에 눈에 띄게 깔끔한 곳이 있다. 은행이다. 유통상가 안에만 3곳, 반경 2km까지 확대하면 국내 시중은행 대부분이 유통상가 및 인근에 점포를 두고 있다. 모바일뱅킹 시대라지만 이곳에서 은행 영업점은 없어서는 안 될 곳이다. 기업 간(B2B) 거래가 많은 공구상과 중소 제조업체 특성상 사업자 계좌 개설, 대출 계약, 고액 수표 거래 등 사업자들에게 필수적인 금융 업무 상당 부분이 여전히 창구에서 이뤄진다.불편 떠안아야 할 중소기업 소상공인 오전 9시∼오후 4시 영업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은행들은 내년 4월부터 30분 늦게 문을 연다. 금융 노사는 최근 오전 9시인 영업점 개점 시간을 9시 반으로 늦추기로 합의했다.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는 유통상가 상인들이 은행 일을 보려면 가게 문을 열고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은행원도 노동자다. 일과 삶의 균형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억대 연봉을 받는 화이트칼라 은행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터에 나오는 블루칼라 근로자와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불편을 떠안아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조 측은 오전 9시에 고객을 맞이하려면 더 일찍 출근해야 한다고 한다. 동이 트자마자 셔터를 올리는 이들에게 일찍 일터에 나오기 힘들어 문을 늦게 열겠다는 은행원의 주장은 배부른 투정으로 들릴 수 있다. 직원 출근시간을 늦추기 위해 고객 이용 시간을 줄이는 건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은행은 정부 라이선스하에 예금을 받고 지급결제 기능을 독점적으로 수행하는 사실상의 공공 인프라다. 아무리 모바일·인터넷뱅킹 시대라지만, 은행에 가야 하는 사람은 여전히 적지 않다.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식사를 거르거나 가게를 비워야 하는 사람도 많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1년, 은행들은 대면 최소화를 이유로 오전 9시∼오후 4시이던 영업시간을 오전 9시 반∼오후 3시 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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