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만 문제로 중국과 전쟁에 돌입할 경우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인 일본과 호주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입장을 양국 정부에 요구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호주 정부는 "어떤 분쟁에서도 선제적으로 병력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FT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일본·호주 국방 당국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를 계속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콜비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입김이 반영된 국방 아젠다의 입안과 실행을 담당하고 있는 인물로, 대중 견제를 위한 동맹의 참여와 부담 분담을 중시한다.
FT는 소식통을 인용해 "대만 유사시 직접 적용될 구체적 작전 구상과 훈련들이 일본·호주와 함께 논의되고 있다"며 "(콜비의) 요구는 미국조차 대만 안보 보장에 관한 백지수표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호주 정부를 놀라게 했다"고 했다. 대만 방어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역대 미국 대통령들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명확히 입장을 밝히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한 소식통은 "이런 요구에 일본·호주, 다른 동맹이 집단으로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콜비 차관의 요구에 일본 방위성은 가정적인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며 "헌법과 국제법에 따라 (대응이) 이뤄질 것"이란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고 FT는 전했다. 호주는 아예 팻 콘로이 호주 방위산업부 장관이 13일(현지시간) "어떤 분쟁에서도 선제적으로 병력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방송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이날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호주의 주권이 최우선이며, 가정적인 상황에 대해선 논의하지 않는다"며 "병력을 파견할지 여부는 그 시점의 정부가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콜비 차관이 주도하는 이번 논의는 미국이 오는 8월 말까지 완성할 예정인 2025년 국방전략(NDS)의 핵심 테마 가운데 하나다. 이 논의에서 그가 한국 정부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2025 NDS에는 그의 평소 지론대로 미국의 전략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 미 본토 방어 등을 최우선으로 전환하고 동맹국에는 북한 등의 위협을 억제하는 역할을 대부분 맡기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감축과 역할 조정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국방 정책의 실세로 꼽히는 콜비 차관은 북한 핵무기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확장억지력을 제공하되 북한의 재래식 위협을 방어하는 역할은 한국이 더 주도적으로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실제로 최근엔 주한 미군을 현재 2만8500 명에서 1만 명으로 크게 줄일 것을 제안하는 내용의 미국 싱크탱크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수석 고문이었던 댄 콜드웰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이 보고서에는 한국 내 공군 전력 중 2개 비행대대를 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