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형 전자담배의 원료인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규정하는 법안이 국회 첫 문턱을 넘었다. 현행법상 담배의 정의가 바뀌는 것은 1988년 담배사업법을 제정한 이후 37년 만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정부는 매년 1조원가량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개정안에는 담배의 정의를 천연 니코틴의 원료인 ‘연초의 잎’에서 ‘연초’ 또는 ‘니코틴’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안이 확정되면 합성 니코틴을 주원료로 하는 액상형 전자담배도 일반 담배와 마찬가지로 판매·광고 규제를 받고, 과세 대상으로 분류된다.
다만 소상공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소매점의 거리 제한 규정을 법 시행 후 2년간 유예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또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자영업자가 업종 전환 또는 폐업을 원하면 정부가 지원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기재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이르면 이달 본회의에 오를 예정이다.
'담배사업법 개정안' 소위 통과…합성니코틴 규제
담배의 정의 '니코틴'으로 확대…정부, 소상공인 피해 최소화
액상형 전자담배의 원료인 합성니코틴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청소년 흡연이 급증하는 등 부작용이 잇따랐지만 ‘담배’에 해당하지 않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에선 2016년부터 매년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업계 반발 등에 부딪혀 번번이 좌초됐다. 22일 여야가 37년 만에 합성니코틴 규제에 뜻을 모으면서 전자담배를 제도권 내에서 관리하고 추가 세수를 확보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연초보다 해롭다”에 급물살
1988년 제정된 담배사업법은 ‘연초잎’을 원료로 하는 경우에만 ‘담배’로 규정해 왔다. 이 때문에 합성니코틴으로 만든 액상형 전자담배는 기존 궐련형 담배와 달리 광고 규제 문턱이 낮고, 온라인·자판기·스쿨존 판매도 가능했다. 미성년이 손쉽게 접근하면서 청소년 흡연율에도 악영향을 줬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각각 2.7%, 1.1%였던 남녀 청소년의 전자담배 흡연율은 2023년 기준 4.5%, 2.2%로 뛰었다. 궐련형 담배 판매 시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과 부가가치세, 교육세, 폐기물 부담금 등도 면제돼 역차별 논란도 이어졌다. 그러나 합성니코틴의 유해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소상공인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논의는 번번이 미뤄졌다.
제도 논의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은 지난해 11월 정부 용역 결과가 나오면서다. 보건복지부가 당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합성니코틴은 리터(L)당 2만2902㎎의 유해물질을 함유해 천연니코틴(L당 1만2509㎎)보다 두 배가량 함량이 높았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5개국이 합성니코틴을 담배로 정의해 규제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수치가 제시되면서 여야는 지난 2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법안 처리는 또다시 좌절됐다. 기획재정부가 개정안에 ‘합성니코틴을 판매하는 사업자는 앞으로도 합성니코틴만 판매해야 한다’는 문구를 추가하자는 의견을 국회에 제시하면서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사업자들이 부당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논의를 연기했다.
◇ 정부 지원 패키지도 마련
이날 소위에서는 여야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정부 대안을 받아들이면서 개정안이 극적으로 통과됐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담배사업법 개정안 관련 주요 내용 및 검토의견’에 따르면 정부는 합성니코틴 판매자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기 위한 거리 제한 유예 기간을 설정하기로 했다. 유예 기간은 법 시행 후 2년(공포 후 2년6개월)이다. 기재위 야당 간사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상가 임대차 보호 기간 등을 고려해 기존 업자들이 자발적으로 규제에 대비할 시간을 주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업자들은 이 기간 안에 담배를 판매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뒤 시·군·구에 담배소매인으로 지정받아야 한다. 관련 부처에 따르면 현재 합성니코틴을 판매하는 소매업자 4000여 명 중 60%가량은 담배소매인으로 지정받지 않은 채 영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기존 판매업자가 업종을 전환하거나 폐업을 원할 경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가장 유력한 정책자금으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희망리턴패키지 사업이 거론된다. 희망리턴패키지는 소상공인의 재창업 및 재취업을 연속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으로, 관련 예산은 내년 3056억원이 반영됐다.
이번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된 후 시행되면 정부는 연간 9300억원가량의 추가 세수도 확보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개별소비세(1900억원), 지방세·부담금(7400억원) 등이다.
담배업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규제 대상에 합성니코틴만 포함되고 ‘무(無)니코틴’을 표방하는 유사 니코틴은 빠진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대형 담배 제조사 관계자는 “흡연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은 원료가 무엇이든 담배로 규제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남정민/정소람/하헌형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