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주요 재건축 단지의 사업 추진 속도가 더뎌지고 있다. 지난 3월 강남구 압구정 4·5구역의 정비계획 변경고시 심의에 이어 최근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통합심의 결과가 잇달아 보류됐다. 사업성을 강화하려는 조합과 공공성을 강조하는 서울시 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게 보류 이유로 꼽힌다. 주요 재건축 단지가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리면서 강남권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압구정4구역, 정비계획 재심의 요청
30일 업계에 따르면 압구정4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지난주 서울시에 정비계획 변경 고시 재심의를 요청했다. 3월 심의가 보류된 지 한 달여 만이다. 당초 압구정4구역은 △랜드마크동 200m 이상 외 다른 층은 50층 미만 건축 △한강변 첫 주동(20m) 형태와 적정성 검토 △통경축 중저층 배치 강화 △덱 삭제 또는 최소화 필요 등의 지적을 받았다. 조합이 제출한 개선안에 지적사항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압구정4구역 조합은 2개 동 정도를 50층 이상으로 짓고 싶어 했지만 서울시는 한강변을 막는 장벽 같은 아파트 단지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조망 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열린 공간을 마련하는 통경축도 중요하게 본다”고 설명했다.
압구정5구역 조합은 4구역과 비슷한 지적을 받았지만 이를 바로 반영하지 않고, 좀 더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4구역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4구역은 5구역과 독립적으로 사업 속도를 낼 계획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두 구역을 한꺼번에 처리하려 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4구역과 5구역은 각각 1722가구, 1401가구로 조성될 예정인데 이 둘을 합쳐야 2구역과 비슷한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속통합기획 때도 두 개 구역을 한꺼번에 했고, 통경축 측면에서도 걸쳐 있다”며 “5구역이 계획을 변경할 때까지 4구역도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잠실5단지 재건축 사업 지연
잠실주공5단지는 건축, 경관, 교통 심의 등을 한꺼번에 진행하는 통합심의가 통과되지 못하고 보류됐다. 잠실주공5단지 조합에 따르면 서울시는 공공보행통로를 늘리고 한강변 동 배치를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압구정4·5구역과 마찬가지로 한강의 공공성을 강조한 셈이다. 서울시 심의 의견에 따라 조치 계획을 마련하고, 다시 심의에 올려야 해 최소한 한두 달은 사업 일정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 조합이 목표로 하는 연내 사업시행인가와 내년 관리처분인가도 늦어질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새로운 계획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사업 일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강남권 주택 공급 부족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조기 대선 이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가 무효화하면 재건축 동력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송파구 잠실동의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대선 이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유지로 사업성이 떨어질 것이란 걱정이 크다”며 “차익을 본 일부 집주인은 대선 전 매각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윤수민 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정치·정책적 불확실성이 큰 시기여서 재건축 사업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며 “수요자는 사업 불확실성이 높은 재건축 단지보다 분양권과 입주권으로 눈을 돌려볼 만하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