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드론 기업 DJI의 공동 창업자인 리쩌샹 홍콩과학기술대 교수가 만든 창업 교육 기관 엑스봇파크의 위상은 주요 방문객 명단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다. 미국 공대 교육 혁신의 상징인 올린공대에서 21년간 총장을 지낸 리처드 K 밀러, 사우디아라비아의 과학기술을 책임지는 KAUST의 에드워드 번 총장을 비롯해 최근엔 글로벌 제조 로봇 시장의 ‘빅4’로 꼽히는 야스카와전기의 오가사와라 히로시 회장이 리 교수를 찾아왔다. 리 교수가 “죽을 각오로” 11년 전부터 공들여 구축한 중국식 창업 생태계를 배우기 위해서다.
중국 스타트업의 사부로 불리는 리 교수를 최근 한국 언론 최초로 만났다. 취재에 동행한 박종우, 조규진, 차석원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진은 “스탠퍼드대 D스쿨 등 미국식 창업 모델에 중국의 막강한 하드웨어 공급망을 결합한 세계 어디에도 없는 창업 대학”이라며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민간에서 이 같은 인재 양성 시스템을 구현한 것이 놀랍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에서 많이 오나.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리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한다. 중국에서도 여러 도시로 혁신의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 한국 방문객은 여러분이 처음이다.”
▷미국에서도 찾는다고 들었다.
“올린공대와는 공식 파트너 관계다. 올초엔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에릭 그림슨 교수(컴퓨터 비전 석학)가 학생 50여 명을 데리고 방문했는데 이곳(둥관, 선전 일대)의 공급망을 보고 엄청 부러워했다.”
▷어떤 공급망을 말하나.
“이곳에선 아이디어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 우리는 스타트업을 위한 새로운 개념을 고안했다. ‘공유 공장’이라고 부른다.”
▷중국이어서 가능한 것 아닌가.
“투자한 스타트업 지분을 팔아 2014년 첫발을 뗐다. 그때만 해도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장학금 받고 유학하려는 학생이 더 많았다. 기존 교육 방식과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도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시작했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다양한 요소를 한데 모아야 했다. 물리적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재를 털어 둥관에 캠퍼스를 지었다. 둥관시가 6년간 2억3000만위안(약 400억원)을 지원해 줬다. 이걸로 시작할 수 있었다.”
▷다른 대학과 무엇이 다른가.
“기존 대학은 교수가 강의하고 학생은 시험 끝나면 다 잊어버리는 구조다. 우리는 창업 경험 자체를 교육에 융합한다. 사용자 조사부터 시장 분석, 수학·물리·엔지니어링까지 직접 부딪치며 배운다.”
▷성과가 궁금하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약 60개 스타트업을 맨땅에서 육성했다. 그중 80%가 지금도 살아남았고, 15%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올해는 XYZ로보틱스(산업용 로봇 자동화 솔루션), 플렉시브(적응형 로봇 기술) 두 곳이 기업공개를 준비 중이다.”
▷창업 경험을 교육에 어떻게 접목하나.
“우선 학생 두세 명을 한 팀으로 구성한다. 이들은 부트캠프에 참여해 어떤 시장에 진입할지 스스로 탐색하고, 팀 구성에서 다양한 조합을 실험해 본다. 캠프 과정을 마치면 팀당 25만위안(약 4000만원)의 시드 자금을 받아 시제품을 개발한다.”
▷모두 적응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맞다. 우리 교육 모델의 핵심은 스타트업 밀도(density)다. 입학 후 창업에 성공해 투자까지 받은 학생 비율을 말한다. 최대한 밀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고, 적응에 실패하면 원래 다니던 대학으로 돌아갈 수 있다.”
▷선발 방식이 독특해 보인다.
“충칭에선 매년 대학 신입생 6000명 중에서 30~50명을 데려온다. 이들은 엑스봇파크 플랫폼에서 교육받으며 하드웨어 시제품을 구상하고, 실제 생산까지 한다. 우리는 이 시스템을 ‘하나의 도시-여러 대학-하나의 플랫폼’ 구조라고 부른다.”
▷왜 대학 1학년을 뽑는 건가.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점에서 신입생이 훨씬 낫다. 선발 시 입학 성적은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최상위 대학 1학년이라고 다 창업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뽑나.
“수많은 경험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했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멘토를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부품 등 공급사 파트너와 벤처캐피털에 학생을 연결하는 코디네이터도 중요하다. 이것들이 모두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다.”
▷대학과의 협업이 필수일 것 같다.
“각 도시의 여러 대학과 손잡고 엔지니어링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있다. 이곳에선 로봇용 모터 제작 등 실제 프로젝트를 해 보면서 수학, 물리, 공급망, 시장 개념까지 통합적으로 배운다. 수학을 수학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를 통해 이해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엑스봇파크의 밀도는 어느 정도인가.
“2020년 탄저우에 건설로봇센터를 열어 우리 모델을 전파했다. 매년 전체 대학 신입생 중 20~30명을 뽑았고, 지금껏 세 기수를 배출했는데 대략 10%가 창업에 성공했다. MIT조차 창업 성공률이 1~7%다. 스탠퍼드대도 0.5%에 불과하다.”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나.
“정부의 파격적인 예산 지원과 정책 뒷받침이 필수다. 대학과 공동으로 조성하는 엔니지어링 프로그램도 계속 현장에서 검증하는데, 잘 안 돌아간다 싶으면 정부가 대학에 시정 명령을 내린다.”
▷한국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교수, 연구원들이 최소 10년 동안 전심전력으로 매달릴 각오를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죽을 각오’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대학 시스템으로는 우리의 혁신적인 방식을 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둥관=박동휘 테크&사이언스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