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야기로 배우는 쉬운 경제]폭염 시대… 에어컨은 이제 ‘생존 인프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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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집-학교에 에어컨 있지만, 쪽방촌에선 선풍기로 여름 나기도
佛, 공공시설 냉방 확대 쟁점 부상
냉방기기 쓸수록 기후 위기 심화… 문 닫고 적정 온도 지켜 사용해야

최근 프랑스에서 에어컨이 뜨거운 논쟁거리가 됐습니다. 폭염이 심해지면서 병원, 요양원, 학교 같은 공공시설에 냉방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 쟁점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프랑스 국민연합은 공공시설 냉방 확대를 내세웠지만 실제 발표된 내용은 국가가 직접 에어컨을 설치해 주는 방식이기보다 무이자 대출을 중심으로 한 지원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분리형 에어컨도 제품과 설치비를 더하면 수백만 원이 들 수 있고, 여러 방을 냉방하거나 공사가 복잡한 경우에는 비용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오래된 석조 건물이 많고 벽이 두꺼운 데다 실외기를 마음대로 달 수 없는 건물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에어컨은 이미 익숙한 물건입니다. 교실, 학원, 집, 지하철에도 에어컨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공간에서 공부하고 이동하고 쉬는 일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이런 여름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에어컨이 너무 비싸 쉽게 설치할 수 없고, 어떤 지역에서는 폭염 때문에 일하고 공부하는 시간 자체가 줄어듭니다.

이 같은 격차는 먼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는 에어컨을 마음 놓고 쐬지 못하는 쪽방촌 주민들, 한 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선풍기 한 대로 한여름을 버텨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시원함조차 경제적 능력에 따라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우리가 마주한 또 다른 현실입니다.

●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준 기술 ‘에어컨’

현대식 에어컨의 출발점에는 미국의 공학자 윌리스 캐리어가 있습니다. 1902년 그는 뉴욕 브루클린의 새킷-빌헬름스(Sackett-Wilhelms) 인쇄소에서 습도 때문에 종이가 늘어나고 잉크가 번지는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캐리어는 공기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시원하게 하려던 기계가 아니라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태어난 기계였던 셈입니다.

이후 에어컨이 공장, 극장, 백화점 등으로 보급되면서 더운 날에도 기계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직원들은 더 오래 집중해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름이면 사람이 줄던 극장은 시원함을 내세워 관객을 불러 모았고 백화점과 쇼핑몰은 더위를 피해 머무는 소비 공간이 됐습니다. 에어컨은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늘린 경제 기술이었습니다.

기술이 문명을 바꾼 사례는 많지만 에어컨만큼 지리적 불평등을 줄인 발명도 드뭅니다. 더운 나라에서는 한낮의 뜨거운 열기 때문에 오래 일하거나 공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에어컨이 보급되면서 사무실, 학교, 병원, 공장이 낮에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두바이, 라스베이거스처럼 더운 지역의 도시들이 성장한 배경에도 냉방 기술이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 리콴유는 에어컨을 역사상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에어컨이 열대 지방에서도 효율적인 업무를 가능하게 했고 공공기관과 기업의 생산성을 높였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에어컨은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라 더운 나라의 노동시간, 도시 성장, 국가 경쟁력에 영향을 준 기술이었습니다.

● “적은 전기 사용으로 더 시원하게 하는 기술을”

반대로 에어컨 없이 버티던 지역은 이제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유럽은 원래 여름이 비교적 선선해 에어컨 보급률이 낮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폭염이 반복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국제노동기구는 2030년에는 더위 때문에 전 세계 노동시간의 2.2%가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는 전일제 일자리 8000만 개, 경제 손실 2조4000억 달러(약 3608조 원)에 해당합니다. 더우면 사람은 느려지고 실수가 늘어나고 농업과 건설업, 운송업 같은 현장 노동은 더 큰 타격을 받습니다.

2003년 유럽 폭염은 이 문제를 잘 보여 줍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수만 명이 폭염으로 목숨을 잃었고 프랑스에서만 1만48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폭염은 단순히 불쾌한 날씨가 아니라 생명과 경제를 동시에 흔드는 위험이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이제 냉방은 사치품이 아니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사회 기반 시설로도 여겨지고 있습니다.

물론 에어컨에는 해결해야 될 문제점도 있습니다. 전기를 많이 쓰고 도시 밖으로 뜨거운 열을 내보내며 냉방 수요가 늘수록 발전소와 전력망 부담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어컨을 쓰지 말자’가 아니라 ‘적은 전기 사용으로 더 시원하게 하는 기술을 어떻게 만들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돈이 없는 사람도 안전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학교, 병원, 노인 돌봄 시설 같은 곳에는 꼭 필요한 냉방시설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름날 에어컨 바람은 단순한 시원함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과학, 경제, 기후, 불평등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에어컨이 바꾼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다만 그 혜택을 누리는 데에는 비용도 따릅니다. 에어컨을 너무 많이 쓰면 전기 사용량이 늘고 누진제로 전기요금 부담도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참는 것도, 마음껏 쓰는 것도 답은 아닙니다. 적정 온도를 지키고 선풍기와 함께 쓰고 문을 닫아 냉기가 새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에어컨이 만든 문명을 현명하게 누리는 방법입니다.

김선 둔전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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