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믹스? 우리도 돈으로 막자"…강남 재건축 집주인들 '발칵'

2 weeks ago 8

서울시, 소셜믹스 원칙에 '유연 적용'…노선 변경
재건축 조합마다 "기부채납으로 막아라" 요구 몰려
업계 "이미 선례도 나와…명확한 기준 제시해야"

서울 성동구에서 바라본 강남구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성동구에서 바라본 강남구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시의 소셜믹스 유연화 방침에 일선 재건축 조합들이 발칵 뒤집혔다. '소셜믹스를 돈으로 막자'는 조합원의 요구가 쏟아진 탓이다. 일부 조합들은 서울시에 소셜믹스 완화에 필요한 구체적인 기부금 규모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소셜믹스 정책을 보다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셜믹스는 아파트 단지 내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섞어 배치하는 정책이다. 모든 동·층에 임대주택을 고루 섞어 어느 주택이 임대인지 알 수 없도록 해 단지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임대주택 거주자에 대한 차별을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서울시는 임대주택을 저층 위주로 배치하거나 동·호수 추첨에서 임대주택을 분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해왔다. 다만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소셜믹스의 본질적 철학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임대주택 수를 늘릴 수 있게 다양한 제도 운영 방법을 검토해보라'는 취지로 제도 개선을 주문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시 관계자는 "선호 동·층에 임대주택을 배치하려다가 조합원들의 반발이 커져 사업 자체가 멈추면 결국 주택 공급이 늦어지고 임대주택 공급도 밀리는 것"이라며 "임대주택을 원활히 공급하면서도 조합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현장의 갈등을 완화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사진=뉴스1

오세훈 서울시장. 사진=뉴스1

서울시의 노선 전환에 일선 재건축 조합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강남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벌금을 내고 소셜믹스를 거부한 단지 사례가 알려지면서 우리도 소셜믹스를 막자고 요구하는 조합원이 부쩍 늘었다"며 "소셜믹스에 대한 조합원들의 거부감이 큰 탓에 이러한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어 시에 향후 방침을 타진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앞서 오는 8월 준공을 앞둔 강남구 대치동 '구마을3지구 재건축 정비사업(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 조합은 일반분양과 임대주택 동·호수 추첨을 별도로 진행해 사실상 임대주택과 일반분양 주택을 분리했다. 서울시의 소셜믹스 정책을 정면으로 어긴 행위이지만, 서울시는 20억원의 현금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이를 수용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동·호수 공개 추첨이 완료된 이후에야 문제를 인지했다"며 "추첨을 무효로 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부득이하게 부당이익금을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사 사례 재발을 막기 위해 매월 수시로 공개 추첨 계획 수립과 일반분양 승인 전 공개 추첨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며 "공개 추첨 위반 처벌조항 신설 등의 법령 개정도 건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처벌 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서울시가 유사 사례 재발을 막고자 벌금을 부과한 것이지만, 재건축 조합원들은 선례가 나온 만큼 다소의 페널티를 받더라도 임대주택을 분리하길 원하는 상황이다.

한 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  기사내용과 무관함. /사진=한경DB

한 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 기사내용과 무관함. /사진=한경DB

다른 재건축 조합 관계자도 "어느 집이 임대주택인지 알 수 없도록 섞으라는 것이 시의 입장이지만, 조합원들은 임대주택과 섞이길 원하지 않는다"며 "사업이 다소 늦춰져도 괜찮고, 추가 기부채납도 좋으니 소셜믹스를 막자는 목소리가 크다"고 토로했다.

소셜믹스를 막자는 조합원 요구가 끊이지 않는 탓에 강남·서초 일부 재건축 조합은 소셜믹스 완화에 필요한 구체적인 기부금 규모나 공공기여 방식 등을 서울시에 문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서울시는 "유연한 제도 운용 방안에 대한 검토를 시작하는 단계"라며 "아직 확정된 방안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는 단발성 대응일 뿐이며, 소셜믹스의 철학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방침이다. 하지만 일선 재건축 단지에서는 당분간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최근 재건축 조합원들은 '얼마나 기부하면 임대주택을 뺄 수 있느냐'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며 "이미 소셜믹스를 파기한 선례가 나온 만큼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조합원들의 극렬한 반발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