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14년이 넘은 공정거래위원회 동의의결제 성적표가 초라하다. 지금까지 인용된 사례는 단 9건이다. 최종 의결까지는 평균 14개월이나 걸렸다. 공정위 한 해 처리 사건이 수천 건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저조한 실적이다. 늑장 조사로 비판받는 공정위 평균 사건 처리 기간(17개월)을 고려했을 때도 별다른 실익이 없었다.
동의의결제는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앞두고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진출에 대비해 도입됐다. 불공정 혐의로 조사를 받는 기업이 자율시정안을 제안하고 공정위가 이를 승인하면 사건을 종결시켜 양측 모두 시간과 비용을 아끼자는 의도였다. 이를 통해 효과적인 소비자 구제책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도입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한 것이다.
현장에선 공정위의 인식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경쟁법 전문가인 한 교수는 “공정위가 ‘대기업 봐주기’라는 여론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한다”며 “차라리 끝까지 조사를 해서 무혐의가 나는 걸 편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법 위반 제재 대신 동의의결을 해주는 것이라는 시각도 심사를 까다롭게 만든다”고 했다. 인식의 문제가 높은 수준의 요구 조건 등 제도적 장애물과 맞물려 시스템 활성화를 가로막는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동의의결제는 기업 봐주기가 아닌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제도다. 소비자 보상안으로 다수 피해자를 한 번에 구제하자는 목적이 있음에도 여론 눈치를 먼저 본다면 앞뒤가 바뀐 셈이다. 공정위도 과거 애플코리아가 이동통신사에 광고비 등을 부당하게 떠넘긴 혐의에 대해 1000억원 규모 상생기금을 담은 시정안을 마련했을 때 “기업 봐주기는 불가능하다”며 이를 크게 홍보했다. 동의의결제는 법 위반 기업을 대상으로 하지도 않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위법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 자발적으로 법률적 리스크를 해소하는 방안이다.
이런 가운데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발 이커머스 공습이 거세지면서 동의의결제 도입에 대한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논의에 올랐다. 해외 직구 피해 등을 막으려면 공정위의 적극적인 인식 개선과 운영규칙 정비가 시급하다. 봐주기 논란을 피하기 위한 철저한 후속 조치 점검은 물론이다.
곽은산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