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전쟁 ‘설계자’ 미란 위원장
최근 각종 연설·인터뷰서 방향 구체화
트럼프 경제 3개축 ‘협상·탈규제·감세’
각국 협상에 ‘2018년 미·중 합의’ 제시
미국 ‘방위우산’의 글로벌 공공재 강조
“각국, 美에 합당한 비용 부담 써내야”
언론, “관세戰, 닭에 사자 낳으라는 것”
스티글리츠, “아마추어의 시간이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관세 전쟁으로 지난주 시장을 대혼란에 빠뜨리면서 트럼프 대통령만큼이나 주목받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의 미친 관세 정책을 설계한 인사로 알려진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입니다.
그가 지난해 11월 작성한 일명 ‘미란 보고서’가 최근 국내에서 회자되는 가운데 지난주 보고서의 업데이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생생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졌습니다.
미국 유명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 기조연설(4월 7일)과 블룸버그 인터뷰(4월 9일)입니다. 트럼프 관세전쟁으로 주식과 채권 시장 동요가 워낙 컸던 탓에 그의 연설과 인터뷰 내용은 국내에서 비중 있게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보고서 속 텍스트에서 뛰쳐나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트럼프 관세 정책을 현실화하는 그의 최근 발언을 보면 섬뜩함과 아연함이 교차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그의 존재감이 결코 작지 않기에 트럼프 관세 정책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 등 각국은 어떤 자세로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응해야 하는지를 그의 관점으로 매일경제가 풀어봅니다.
지금 트럼프노믹스의 요체을 알려줄게. 그것은 “무역협상, 규제 완화 그리고 감세”
트럼프 대통령이 전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무기를 꺼낸 이유는 하나입니다. 미친 수준으로 오른 관세율 숫자를 정상화하려면 미국으로 건너와 협상하라는 것이죠.
미란 위원장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현재의 트럼프노믹스를 세 개의 다리를 가진 의자로 치면 첫 번째가 ‘무역 협상’이고 둘째가 ‘규제 완화’, 그리고 셋째가 ‘감세(조세개혁)’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무역 협상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비정상적인 무역적자를 완화하고 비관세 장벽을 낮춰 미국산 제품의 수출 확대를 이룰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무엇보다 높아진 관세율을 통해 새로운 관세 수입 확장이라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개의 다리가 동시에 버티고 있는 만큼 무리한 관세 전쟁이 유발할 경기 침체 등 시장 불확실성에 동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규제 완화로 기업들의 고용과 투자를 신속하게 이행시키는 동시에 대규모 관세 수입이 이뤄지면 이를 감세의 재원으로 써 기업(법인세)과 가계(재산세)의 투자 및 지출 확대에 기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감세 정책이 의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라며 “지난 해방일(4월 2일 상호관세 발표일 지칭)의 우리가 경험한 것은 모든 수입품에 대한 실효 관세율이 약 13%포인트 올랐다는 것이며 이는 미국인들에게 추가적인 세금 감면을 제공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수천억 달러의 수입을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수치가 13%포인트인데 그의 설명으로 보면 4월 2일 발표된 국가별 상호관세율이 그대로 확정되면 미국이 얻는 새 관세 수입이 연간 수천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미국은 2024회계연도에 국채 이자로만 1조1330억 달러(약 1657조원)를 냈는데 부채 원금은 아니더라도 새 관세 수입으로 국채 이자의 상당 부분을 메울 수 있는 파이프라인이 생기게 됩니다.
미란 위원장은 “이 세수를 (부채 원리금 변제와 더불어) 추가적인 세금 감면에 사용한다면 환상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규제 완화가 현재 진행 중이고 관세를 통해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조합이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경기침체? 중국의 불복? “걱정하지 마. 결국 미국이 승리할거야”
무리한 관세 전쟁으로 인한 잠재적인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는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거의 확신범 수준으로 관세 전쟁을 정당화하는데요. 그는 미국 경제가 어떤 종류의 의미 있는 경기 침체나 불황으로 향할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승리의 마법 공식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기에 있다고 환기시킵니다.
“많은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이 성장친화적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지난 몇 주 동안 일어난 일은 금융 시장이 과도한 변동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일은 미국 경제와 미국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훌륭한 무역 거래를 만들고 이러한 무역 거래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수십 개 국가들이 우리와 대화하고 싶어하고 무역 협정을 체결하고자 문을 두드리고 있다.”
강대강 대치 전선을 굽히지 않고 있는 중국을 향해서도 그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중국보다는 미국이 가진 패가 더 많은 만큼 결국 중국이 협상 모드로 전환할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중국에 대한 나의 조언은 지렛대를 가지고 있는 쪽은 미국이며 중국은 미국보다 잃을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또 모든 이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중국은 데탕트(긴장 완화)를 추구해야 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양보를 제공해야 한다.”
미국 소비자들은 마법의 존재? “美소비자, 수요 패턴 바꿀 능력 있어”
개인적으로 미란 위원장의 논리 중 가장 황당하게 들리는 대목으로, 그는 트럼프 관세전쟁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미국 소비자들의 마술 같은 능력을 언급합니다.
현명한 미국 소비자들이 자국 경제의 재건에 유리한 선택, 이른바 애국 소비 등으로 트럼프 관세 정책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뉘앙스입니다.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최근 금융시장의 동요와 변동성을 설명하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종국에 국경을 넘어 수요 패턴을 바꿀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자기실현적 주문을 외는 것처럼 그는 “그것이 자국 생산자에게 수요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하든 우리를 열악하게 대하는 나라에서 잘 대해주는 나라로 수요를 옮기는 것을 의미하든 미국 소비자는 수요 패턴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이 소비발 수요패턴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며 미국을 잘 대해주는 국가들이 이 변화에 수긍해 온당한 부담을 감수할 것이라는 어린 아이같은 논리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각국과 협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미란 위원장이 빼먹지 않고 내놓는 논리도 있습니다. 바로 ‘방위’를 미국이 공급하는 ‘글로벌 공공재’로 규정하는 행태입니다.
지난해 미란 보고서 내용처럼 그는 세계 각국이 향유하는 미국 중심의 글로벌 무역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체로 ‘방위 우산’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이 이 방위 우산을 제공하며 무역을 통해 세계 각국에 번영을 제공하는 만큼 각국은 미국과 무역협상 과정에서 성의껏 돈을 내라고 거칠게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죠.
그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런 방위 우산을 제공하는 데 기여하도록 각국은 미국에 어느 정도의 돈을 보낼 것이다. 나는 이것이 유익한 결과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미국민을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협상을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도 강조합니다.
“나는 경제학자이지만 방위와 무역은 깊은 관계가 있다. 중국과 브라질이 무역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두 나라 모두 신뢰할 수 있고 유동적이며 전환 가능한 통화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거래가 어렵다. 그러나 미국 국채로 뒷받침되는 달러로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자유롭게 거래하며 번영한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와 금융 우위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그는 이 연설에서 심지어 각국이 방위라는 글로벌 공공재를 대는 트럼프 행정부에 고마움의 표시로 재무부에 수표를 써주는 방안(you could simply write checks to Treasury that help us finance global public goods)까지 제안합니다. 주요 무역 파트너국들을 상대로 미 국채 매입 확대는 물론 그가 미란 보고서에서 언급한 ‘100년 만기 국채’ 전환 욕심까지 이 발언에 투영된 것 같아 섬뜩합니다.
한국은 어떻게 미국과 협상해야 할까? “미중 1단계 무역합의를 참고해”
그렇다면 한국은 석 달이라는 상호관세 유예 기간 동안 미국과 어떤 방식으로 협상을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요긴한 힌트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미란 위원장이 제시하는 모범 답안은 뜻밖에도 실패한 협상으로 간주되는 지난 2018년 미·중 간 1단계 무역 합의입니다. 1기 집권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중국으로 좁혀 얻어낸 전리품으로,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면서 흐지부지됐습니다.
그러나 미란 위원장은 이 결과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8년의 1단계 무역 합의믄 미국에 환상적이었다. 대통령이 이 합의를 만들었는데 지식재산권 문제를 포함시켰다. 시장 접근과 미국산 농산물 구매도 있다. 여기에 환율 조작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문제를 다뤘다. 이것은 환상적인 거래였다.”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지만 미란 위원장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협상을 관세율로 좁게 보지 말고 협상 테이블에 응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거래 리스트를 준비했든 미국은 2018년의 대중 1단계 합의처럼 지식재산권과 미국 농축산물 구매, 서비스 시장 접근 환율 조작 등 모든 비관세 장벽 이슈를 투척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특히 미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공하는 관세 전쟁의 뼈대에는 앞서 설명한 ‘방위’ 개념이 터 잡고 있습니다. 미국이 제공하는 환상적인 무역 거래에 방위 비용이 들어가 있으니 그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인데, 미란 위원장의 눈으로 보면 한국은 주한미군에 내는 방위비를 지금보다 화끈하게 올리는 내용으로 미국 협상팀에 선물을 주고 방산 협력과 관세율 인하에서 실익을 취하는 협상 방식을 택해야 할 수 있습니다.
이 어려운 협상이 끝나려면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에 대놓고 자랑할 수 있는 ‘헤드라인’을 제공해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1기보다 공격적으로 동맹국과 무역 협상에 방위 비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죠.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임팩트 있는 헤드라인을 고려할 때 현재 1조5000억원 수준의 방위비 분담금이 두 배인 3조원까지 급등할 가능성까지도 상정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이 미국의 조선 관련 방산 협력에서 을이 아닌 갑의 위치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순진무구한 미란식 논리···노벨 경제학상 스티글리츠, “지금은 아마추어의 시간”
트럼프 2기에서 새롭게 증강된 관세 전쟁은 이렇듯 상호관세를 명분으로 모든 비관세 장벽을 무역 협상에 끌어들인 점, 방위 비용 분담에 대한 각국의 성의 표시를 요구하는 점을 특징으로 합니다. 특히 미란 위원장의 ‘3개 의자 다리’ 설명처럼 새로운 관세 수입은 트럼프 감세 정책의 새 재원으로 활용될 계획이라는 점에서 설령 한국이 미국에 어떤 협상 카드를 내놓더라도 25%로 설정된 상호관세율이 크게 내려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는 일본, 대만 협상팀도 비슷하게 고민하는 지점일 것입니다.
아울러 이런 막가파식 트럼프 관세전쟁 논리에 대해 경제석학과 미 주류 언론의 비판 강도는 갈수록 세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친트럼프 성향의 보수 경제 매체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편집위원회 일원이자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홀먼 젠킨스조차 지난 11일 칼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근거 없는 무역 전쟁으로 인해 탄핵이 기정사실화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의 관세 논리가 새로운 미국의 ‘황금기’를 강제로 실현하려 하기에 국제사회와 사전 합의나 연대가 없다는 지적입니다.
무엇보다 트럼프식 관세 논리가 성공하려면 이 무자비한 요구에 대해 다른 나라의 ‘보복’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순진한 발상이라는 게 그의 일침입니다. 한마디로 “닭에게 사자를 낳으라고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콜럼비아대 석좌교수의 비판도 눈에 들어옵니다.
그는 11일 영국 채널4와 인터뷰에서 지금의 관세 전쟁은 중국보다 트럼프 경제팀이 미국 경제에 더 심각한 피해를 주는 역설적 상황이라고 진단합니다. 제 발에 총을 쏘고 있다는 것인데, 그는 특히 트럼프 경제팀의 아마추어성을 염려합니다. 수십 개국과 무역 협상을 준비해야 하는 미 재무부와 무역대표부 등 트럼프 경제팀 수준이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염려입니다.
“지금은 아마추어의 시간이다. 똑똑하고 월스트리트에서 일 잘하는 사람들이 트럼프팀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 정책의 복잡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통상과 경제) 문제를 다뤄온 사람들이 이제서야 이 이슈를 생각하기 시작한 (트럼프팀) 사람들과 소통하려 하면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미국 협상팀과 접촉한 다른 나라 협상팀으로부터 들은 평가를 토대로 트럼프 협상팀이 제대로 무역 협상을 봉합하기보다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만 증폭시킬지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90일간 유예된 협상의 시간은 세계 각국에 미국 행정부의 아마추어성을 드러내는 시간이 될 수 있으며, 90일이 지나고 세계 경제는 더 울퉁불퉁한 변동성의 경로를 갈 수 있다는 것이죠.
이 같은 트럼프 경제팀의 아마추어성에는 2기 관세전쟁의 논리적 토대를 제공한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도 포함될 것입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당부합니다.
“우리는 미국 기업과 다른 서구 기업, 그리고 미국 금융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무역 제도를 만들었고 이제서야 제도가 불공평하다고 불평하고 있다. 물론 불공정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미국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 미국으로부터 멀어진 게 아니다. 문제는 트럼프가 무역적자, 특히 상품 적자를 불공정 무역의 증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수입보다 수출을 더 많이 일궈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다. 그는 (관세 인상으로) 철강이나 알루미늄과 같은 몇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철강과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분야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파괴했다. 전체 포트폴리오를 볼 때, 트럼프가 하는 일은 일자리 창출보다 일자리 파괴에 훨씬 가깝다.”
영생의 불로초를 찾아 헤맨 진시황처럼 미국의 대통령은 관세전쟁을 미국 경제의 불로초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독초를 손에 들고 불로초라고 우기는 노회한 협상가를 상대로 한국 협상팀은 성급함보다 시장 분위기를 함께 살피는 신중함이 필요해 보입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시장의 반작용이 흔들리는 미 국채 수요로 확인됐고 트럼프가 쥐고 있던 패는 4월 2일 미국 해방일 선포 이후 훨씬 작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