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새 상호관세율을 발표하자 국내 기업들이 수출 전략 수정에 착수했다.
미국 공장 생산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부품 공급도 현지화하는 방향이다. 또 미국 상호관세율이 낮은 국가에서 생산량을 늘려 대미 수출 역량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상호관세율이 높은 국가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경우 미국이 아니라 대체시장으로 수출 활로를 모색한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판매 차량의 생산지 이전 방안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 전무는 지난달 25일 콘퍼런스콜을 통해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량은 전적으로 미국 내로 공급하는 전략을 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 역시 미국 앨라배마 공장과 조지아주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를 최대한 활용한다.
기아가 멕시코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연 12만대)은 축소가 불가피하다. 멕시코산 자동차는 여전히 품목관세 25%를 적용받기 때문에 운송비를 고려해도 한국산(상호관세 15%)으로 대체하는 게 이득이다.
자동차부품 업계는 미국 현지 공장과 멕시코 공장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부품은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에 따라 미국 수출 시 관세 0%를 적용받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공장이 없는 기업들은 멕시코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전 업체들은 세계 곳곳에 산재한 공장을 활용한다. 해당 국가의 관세율과 해당 국가에서 미국으로 제품을 운송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더해 가장 저렴한 생산지를 찾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USMCA 덕분에 관세 0%를 적용받는 멕시코 공장에서 TV와 냉장고를 생산해 수출한다. LG전자도 멕시코를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다. 또 LG전자는 경우에 따라 베트남(미국 상호관세율 20%) 인도(25%) 태국(19%) 등에서 생산한 제품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지만 일부 물량을 제3국으로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휴대폰의 경우 품목관세 0%를 적용받고 있지만 미국 정부가 휴대폰 관세율에 변화를 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어 예의 주시하는 상황이다. 품목관세가 0%보다 높아져도 미국 시장 경쟁사인 애플도 전량 해외에서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전날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 품목에서 철강과 알루미늄이 빠지면서 관련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이들 품목에는 기존 50% 관세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뜻이다. 철강 업계는 50%의 관세가 지속될 경우 미국 시장 수출은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미국 내 전기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제 막 공장용지를 선정한 단계여서 상업생산은 적어도 2029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미국 수출길이 사실상 막힌 만큼 대체시장을 찾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정부와 협력해 일부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 면제를 얻어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회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전선 업계는 미국 내 생산 확대와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가격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변압기에는 대당 5~10t 정도의 구리가 포함되기 때문에 만약 철강 관세(50%)가 적용돼 최종 제품 가격이 오르면 가격 경쟁력이 위협받을 수 있다. 데이터센터를 구성하는 고성능 전력케이블, 냉각 시스템 부품 등에도 다량의 구리가 사용된다.
LS일렉트릭은 미국 내 생산기지인 베스트라 캠퍼스의 배전반 생산을 확대하고 미국 내 생산기지 확장에 속도를 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효성중공업도 미국 내 공장 증설을 통해 수요 대응력을 높였으며, 유럽 중동 오세아니아 등 미국 외 지역으로도 시장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상호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LS전선은 현재 주력 제품인 HVDC 및 해저케이블 분야에서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되면서 공급자 우위인 상황에서 당장은 유럽 시장에 집중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