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 상장사인 C사는 본사 해외 이전과 경영권 매각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가업 승계를 추진했는데 피상속인을 포함한 최대주주 지분율이 상속 개시일부터 10년간 20%를 넘겨야 한다는 가업상속공제 요건이 발목을 잡았다. 매년 거액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회사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투자를 유치하다 보니 창업주 일가 지분율이 10%대 중후반에 머물러 있다. C사 관계자는 “상속세를 내려고 주식을 팔면 경영권이 위협받게 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상속세 부담 때문에 해외 이전으로 가업 승계를 해결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국내 가업 승계 시 현행법상 최대 600억원까지 상속·증여세가 공제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보니 아예 상속세가 없는 싱가포르, 홍콩 등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1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나 홍콩으로 본사를 이전하려는 국내 기업의 문의가 꾸준히 늘고 있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싱가포르나 홍콩으로 본사를 이전해야 할지를 물어보는 기업은 대부분 승계 이슈가 걸려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엔 상속·증여세가 없다. 법인세율은 싱가포르 17%, 홍콩 16.5%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배당소득세도 없다. 최대주주 할증을 포함해 6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율, 최대 26.4%인 법인세율, 연 2000만원만 넘겨도 최대 49.5%인 배당소득세를 부과하는 한국과는 천양지차다.
이런 격차 때문에 플라스틱 사출 전문 중견기업인 유도그룹은 2019년 홍콩에 지주회사를 세워 그룹 본사를 이전했다. 글로벌 알루미늄 텐트폴 시장에서 점유율 90%를 차지하고 있는 동아알루미늄 자회사이던 캠핑용품업체 헬리녹스도 2023년 싱가포르에 지주회사를 세우는 방식으로 본사를 옮겼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비즈니스 허브인 싱가포르와 홍콩에 기반을 두고 글로벌 사업에 주력한다는 것이 본사를 이전한 공식 이유지만, 막대한 상속·증여세 부담이 배경에 있다는 게 투자업계의 평가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