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시절에도 관저가 아닌 작고 허름한 아파트에 살았다. 평소 자동차나 운전사도 두지 않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했다. 이런 교황의 소탈한 모습은 2019년 개봉된 ‘두 교황(The Two Popes)’에서도 소개됐다. 로마 교황청을 방문할 때도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그는 평소 신자들에게 “교황청을 방문할 돈으로 빈자들에게 기부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서 즉위명을 딴 교황은 언제나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파격 행보를 이어왔다. 난민이나 기후변화 등 사회문제에도 역대 어느 교황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보수적인 가톨릭계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 “하나님 가르침으로 성장한 평범한 사람”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12월 1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철도 노동자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교황은 평소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집불통에다 주먹이 먼저 나가기도 한 문제아에 가까웠다”라고 회고했다. 자전거를 망가뜨린 학교 친구에게 수리비를 내놓으라고 고집을 부리고, 다른 학교 친구를 때려 거의 의식불명 상태로 만든 적도 있었다고 한다. 교황은 자서전을 통해 “여느 소년과 다를 바 없었지만, 주님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은 게 있는데, 바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수치심”이라며 “태어날 때부터 89세가 된 지금까지 하느님의 가르침으로 계속 성장하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술회했다.
● 투명한 교회와 소외계층 돕기에 주력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한 그의 모습은 추기경 시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참석 때도 잘 드러났다. 구두가 낡아 출장 준비를 도와주던 신부들이 돈을 모아 새 구두를 사드렸을 정도였다. 비즈니스석을 사려 했던 비서 신부에게는 일반석을 사라고 했고, 평소 고기 외식도 꺼릴 정도로 검소했다. 가톨릭에서 추기경은 에미넨차(Eminenza), 주교는 에첼렌차(Eccellenza)로 불러야 한다. 하지만 그는 더 친근함이 느껴지는 ‘파드레(신부)’로 불러주길 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고령과 건강을 이유로 자진 사퇴한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교황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콘클라베 직전까지도 그가 선출될 것이란 전망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콘클라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출한 것은 교황청 안팎에 대한 신뢰 회복이 절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교황청을 쇄신하는 데 프란치스코 교황만 한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교황은 평소 “교회의 기본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초창기 교회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충실하게 사는 것만이 바른 해법”이라고 주장해 왔다.
● “타인의 비극에 눈감지 말라”
2014년 6월 중동을 방문해 평화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당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참석했다. 평화 기도 모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정치적 분쟁 해결을 도모하고자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으로 열렸다. 당시 교황은 평화 기도회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평화 정착에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실패했고 이것이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라고 말했다.
교황의 인기에 힘입어 영국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신자 수가 늘어나 ‘프란치스코 효과’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입장할 때면 엄숙한 성당 곳곳에서 각국 주교와 추기경들이 사진을 찍으려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디지털 소통에도 능한 교황의 공식 ‘X’ 팔로어는 현재 1864만 명에 이른다.
2014년 8월엔 4박 5일 일정으로 방한해 “의심과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한민족의 고귀한 전통 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라며 한반도에서의 화해를 강조했다. 그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에 초청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 지역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등의 손을 맞잡고 위로했다.
교황은 즉위 10주년 인터뷰에서 앞으로 바라는 것을 묻자 “평화”라는 한 단어로 답했다. 그는 “타인의 비극에 눈을 감고 ‘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관심”이라며 국제사회에 ‘무관심의 세계화’를 경계하고 세계 곳곳의 전쟁과 폭력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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