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글로벌 인재정책, 이제는 유치보다 정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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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민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 원장배태민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 원장

21세기 과학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은 결국 '인재'다. 실리콘밸리가 세계 혁신 중심지가 된 것도 전 세계 최고 두뇌들이 모여 창조적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분야 글로벌 경쟁 역시 우수한 연구인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승부가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치열한 인재 경쟁에서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재 공급 기반 자체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출생아 수가 2000년 63만명에서 지난해 23만명으로 급감했고, 이공계 대학원생 수도 2021년 8만7000명에서 2050년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디지털 전환과 신산업 확산으로 첨단기술 인재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수급 불균형은 단순한 양적 부족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근간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위기를 돌파할 핵심 열쇠는 해외 우수 인재 전략적 활용이다. 다행히 국내 외국인 유학생은 2015년 9만명에서 지난해 21만명으로 크게 증가했으며,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 조사에 따르면 이공계 외국인 대학원생 53.4%가 졸업 후 한국 취업을 희망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여전히 글로벌 인재들에게 매력적인 연구 목적지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희망적인 지표 이면에는 우려스러운 현실이 숨어있다. 외국인 인재 유치가 곧바로 '정착'과 '활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 따르면 박사학위 취득 후 한국에 정착하는 외국인 비율은 2016년 40%에서 2021년 30% 이하로 오히려 감소했다. 절반 이상이 한국 취업을 꿈꾸지만, 현실 벽에 부딪혀 힘들게 키운 인재 7할이 떠나는 '인재 유출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 외국인 연구자들이 개인 인맥에 의존해 진학이나 취업 정보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외국인 유학생의 유치에서 국내 정착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이 일환으로 KIRD는 '생활-연구-정주'로 이어지는 전주기 통합 지원 체계 구축을 추진 중이다.

첫째, 생활 정착 단계에서는 신뢰할 수 있고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한다. AI 기반 정보 서비스와 전문가 상담을 통해 비자부터 주거, 의료, 자녀 교육까지 실생활 전반을 지원한다.

둘째, 연구·경력개발 단계에서는 맞춤형 성장 경로를 제시한다. 대학원생에게는 한국 R&D 환경 이해와 연구기획 참여, 진로 설계 멘토링을 제공한다. 재직 연구자에게는 연구책임자로의 성장을 위한 리더십 프로그램과 네트워킹 기회를 마련한다. 이는 외국인 연구자가 국내 과학기술 생태계에 정착하며 연구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적 투자다.

셋째,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통합 플랫폼과 다문화 연구팀 활성화를 추진한다. 생활과 연구 정보를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내외국인이 함께하는 연구팀의 시너지를 극대화한다. 이러한 전주기 지원을 통해 다양성이 혁신 원천이 되는 연구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노벨상 수상 연구 대부분은 다국적 협업 산물이며, 글로벌 혁신 기업들이 다양한 배경의 인재들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국인 연구자의 안정적 정착은 단순한 인력 보충이 아닌, 우리나라 과학기술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략적 선택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전 세계 인재들이 '오고 싶고, 살고 싶은' 나라가 돼야 한다. 글로벌 인재와 함께 성장하는 대한민국, 다양성과 포용성이 경쟁력이 되는 미래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한다.

배태민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 원장 baetmin@kird.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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