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영향이 크지 않다고 밝혀 주목된다. 파월 의장은 어제 “관세 인상이 일부 상품의 가격 상승을 촉발하고 있으나 영향이 일시적이고 단발적 수준에 그칠 수 있다”며 “지금은 노동시장이 식고 있어 물가가 지속해서 폭등할 위험이 줄었다”고 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금리를 연 4.0~4.25%로 0.25%포인트 내린 이유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고용 둔화에 있다고 밝힌 것이다.
당초 국가별로 최저 10%에서 최고 50%에 가까운 상호관세를 부과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겨 미국 경제에 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기업이 수출 가격을 낮춰 관세 부담을 전부 흡수하기 어려운 만큼 미국 소비자가 일부 가격 인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관세 부과가 현실화했음에도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대미 수출기업이 가격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현지 가격에 관세를 전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수출기업은 무관세 현지 제품과 경쟁해야 하고 경쟁 수출사의 눈치도 볼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25%의 관세를 무는 현대자동차·기아도 판매가격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에 따른 수익성 악화는 고스란히 수출기업 부담이다. 최근 LG전자가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가전 사업은 미국 관세 폭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데다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의 공습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이외 시장에서 벌이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날 파월 의장의 물가 상황 진단은 미국의 고강도 관세정책이 쉽게 철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력 시사한다. 국내 경기 침체와 팍팍한 규제 환경, 중국 제조업의 거센 도전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갈수록 사면초가로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