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고기', '미로' … 올해 BIFF에서 주목할 한국 장편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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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을 맞는 부산국제영화제는 그야말로 축제의 본연을 보여줄 듯하다. 예년에 비해서 훨씬 증가하고 화려해진 포럼, 토크 행사도 그러하지만 영화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 역시 그러하다.

특히 올해 영화제에서는 한국영화의 강세가 작년과의 차이점으로 보인다. 올해 영화제는 부국제로 데뷔하는 신인뿐만 아니라 두, 세 번째 작품으로 부산을 찾는 (임선애, 양종현 등) 비교적 초년 감독들의 작품들이 유독 눈에 띈다. 이들의 작품이 중요한 것은 데뷔 이후로 안정적인 커리어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를 갖기도 하고, 현재 작품으로 이들이 앞으로 보여줄 활약과 한국 영화산업 내에서의 위치를 점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리보는 부국제 첫 번째 편에서는 주목해야 할 한국 감독 두 명,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1. <사람과 고기> (양종현) [한국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사람과 고기>는 <더 펜션> (2018), <킬 미> (2009)를 연출한 양종현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그의 첫 상업영화 <킬 미>는 관객으로부터도, 평단에서도 큰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지만 두 번째 작품이자 옴니버스 영화 <더 펜션>은 그가 단편으로 참여했음에도 작가 및 감독으로서의 양종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전도유망한 작품이었다. <더 펜션>은 산속의 외딴 펜션에서 일어나는 네 가지 이야기를 담은 호러, 스릴러 영화다. 이 작품에서 양종현 감독은 세 번째 에피소드 <산속에 혼자 사는 남자> 편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곧 부산에서 프리미어로 공개될 신작 <사람과 고기>는 이전 그가 만들었던 로맨틱 코미디, 호러 등의 장르 프로젝트와는 다른 세 명의 노인을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 영화다. 영화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형준(박근형)과 우식(장용), 그리고 난전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화진(예수정)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만나 형준의 제안으로 그의 집에서 저녁을 함께하기로 한다.

소고기뭇국이 먹고 싶다는 형준의 말에 우식은 정육점에서 고기를 훔쳐서 형준에게 건네고, 요리를 할 줄 모르는 그는 채소 장수 화진에게 부탁하게 된 것이다. 고깃국으로 뭉친 이들은 이후에도 고깃집 외식을 함께 나가며 우정을 다진다. 다만, 정육점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먹튀를 전제로 말이다. 그렇게 이들은 서울 전역을 누비는 고기 절도단으로 활약하며 새로운 인생의 국면을 즐기게 된다.

'사람과 고기', '미로' … 올해 BIFF에서 주목할 한국 장편 상영작

양종현 감독의 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컷 / 사진출처. ©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양종현 감독의 영화 <사람과 고기> 스틸컷 / 사진출처. ©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이 영화를 죽음에 임박한 세 노인의 절절한 신파영화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진솔한 대사에는 힘이 넘치며, 세 노장 배우 박근형, 장용, 예수정의 연기는 예상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경이롭다. 영화는 마치 <쥘 앤 짐>의 고깃집 버전을 보는 듯 활기와 유머가 가득하다. 물론 영화에 후반, 우식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관객은 그의 애환을 엿보게 되지만 그것은 한국영화에서 무수히 다루었던 뻔한 신파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이들 각자의 딜레마가 노인이 아닌 가족 구성원, 혹은 현시대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누구도 가질 수 있는 것임을, 그리고 그 문제를 노년에 맞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담담하지만 유려하게 재현하고 있다. 세 노인뿐만 아니라 이들의 친구와 시장 동료 등 갖가지 캐릭터를 구체적이고 세심하게 만들어낸 양종현 감독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의 주역, 박근형, 장용, 예수정 배우에게 그에 마땅한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들이 나란히 부산의 레드카펫을 걸어 나갈 순간이 지금부터 설렌다.

[BIFF2025 Trailer | 사람과 고기 People and Meat | 한국영화의 오늘 - 파노라마]

2. <미로> (신선) [비전]

<미로>는 고경표 배우가 동료 강태우 배우와 공동 제작을 맡은 프로젝트로 공개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작품의 연출을 담당한 신선 감독은 그의 데뷔작 <모퉁이> (2022)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를 포함한 메이저 영화들에서 주목받았던 인재이기도 하다. <미로>는 <모퉁이> 이후로 이어지고 있는 건대 프로젝트 (이들은 모두 건국대학교 영화과 출신이다) 이기도 하다. 광화문 시네마가 그랬듯, 이들의 협업이 독립영화에서 의미 있는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건대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 <미로>는 지독한 우울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남자 영문(고경표)이 탐정 사무소에서 직원으로 일했던 희미(위지원)에게 한 남자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며 시작된다. 영화는 중반이 넘어가도록 영문이 어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지, 그가 찾는 남자는 그와 어떤 관계인지 설명하지 않은 채 그들 각자의 일상을 보여주며 서스펜스를 유지해 나간다. 영화의 중후반이 돼서야 관객은 영문이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으며 그때 운전을 했던 남자(류경수)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영문은 마침내 그의 직접 증언을 통해 아내가 의도적으로 차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었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사람과 고기', '미로' … 올해 BIFF에서 주목할 한국 장편 상영작

신선 감독의 영화 <미로> 스틸컷 / 사진. © Filmer Co., Ltd./ ©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신선 감독의 영화 <미로> 스틸컷 / 사진. © Filmer Co., Ltd./ ©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미로>는 무겁고 답답하다. 그러나 이 무거움과 답답함은 지극히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감독은 적어도 영화의 러닝타임의 반 이상, 관객이 영문의 절박함과 무력함을 느끼길 원했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그 결과가 효과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희미와 영문, 운전자 세 캐릭터의 분절된 서사로 흘러가는 첫 파트는 영문의 심정적인 무력감보다 영화의 모호함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영문이 운전자의 부모가 운영하는 펜션에 당도하면서부터 탄력을 받는다. 미스터리의 한 겹이 벗겨지면서 사건과 캐릭터, 그리고 그들의 행동 동기가 한번에 명확해지는 것이다.

<미로>는 부국제 ‘비전’에 어울릴만한 작품이다. 초년 감독의 비관습적인 선택과 영화적인 수려함이 혼재하는. <미로>에서 보여지는 (낯설지언정) 영화적 실험성은 궁극적으로 그의 커리어에 있어서는 부스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선 그리고 고경표 배우를 비롯한 모든 협업자의 다음 프로젝트에도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BIFF2025 Trailer | 미로 Maze | 비전 - 한국]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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