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멈추게 한 여자[이준식의 한시 한수]〈390〉

4 days ago 13

비단 같은 금강 물결, 빼어난 아미산, 그 영기 모아 탁문군과 설도를 빚어냈네.재치 있는 말솜씨는 앵무새 혀를 훔친 듯하고, 화려한 문장은 봉황의 깃을 나눠 받은 듯하네.문인들은 저마다 붓을 멈추고, 고관들은 앞다퉈 촉 땅 부임을 꿈꾸네.이별 뒤 그리움은 아득한 물길에 가로막히고, 창포꽃 피어도 오색구름은 아득히 높기만 하네.(錦江滑膩蛾眉秀, 幻出文君與薛濤. 言語巧偷鸚鵡舌, 文章分得鳳凰毛.紛紛辭客多停筆, 箇箇公卿欲夢刀. 別後相思隔煙水, 菖蒲花發五雲高.)―‘설도에게 보내다(寄贈薛濤)’ 원진(元稹·779∼831)칭찬에도 급이 있다. 이 시는 설도에 대한 최상의 예찬으로 일관한다. 촉 땅의 아름다운 산천이 한나라 때는 재녀 탁문군(卓文君)을 낳더니 이번에는 설도를 만들어 냈다고 치켜세운다. 말솜씨는 앵무새처럼 영리하고, 문장은 봉황의 깃털처럼 빛난다고 했다. 과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설도 앞에서는 이름난 문인들도 붓을 멈추고, 높은 벼슬아치들은 그녀를 만나려고 촉 땅에 부임하기를 꿈꾼다고 했다. 마지막에야 분위기가 달라진다. 화려한 칭찬은 사라지고, 멀리 떨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남는다. 창포꽃과 높은 구름은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거리를 에둘러 보여준다. 전승에서는 원진과 설도의 각별한 관계를 이야기하지만, 확인하기 어려운 연애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설도에 대한 문학적 평가다. 쟁쟁한 문인들의 붓을 멈추게 만든다는 찬사가 어디 함부로 쓸 말이겠는가.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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