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주요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공사비 증액 등의 문제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준공을 한 달여 앞두고 최종 합의를 이뤄내지 못해 입주 지연 사태까지 우려되는 사업장도 등장했다. 조합과 시공사 간 입장 차이를 줄이기 위해 한국부동산원 등을 통해 공사비 검증에 나서기도 하지만, 결과를 두고 논란이 지속되는 등 공사비 갈등이 여전히 진행형이다.
◇공사비 논란에 입주 지연 우려
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최근 서울 성동구 ‘행당7구역’(라체르보 푸르지오 써밋) 조합원에게 안내문을 발송해 “공사비 증액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시공사의 마지막 권한 행사인 입주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통보했다. 이 단지는 다음달 입주를 앞두고 있다.
대우건설은 지난 1월 행당7구역 조합에 공사비 169억원 증액을 요청했다. 일반분양을 위한 추가 경비, 무이자 사업경비 정산 관련 부당이득 반환, 마감재 기준 상향으로 발생한 공사비 차액분 등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행당7구역은 조합 설립 무효 소송 등 여러 어려움이 있던 사업장이지만 작년 8월 분양 후 100% 계약을 마쳐 조합이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며 “대우건설은 공사비 상승에 300억원가량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대우건설은 공사비 증액(169억원)을 포함해도 3.3㎡당 공사비가 663만원으로 다른 서울 정비사업과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용산구 한남4구역은 3.3㎡당 공사비가 938만원, 남영2구역은 1048만원이다. 조합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합 관계자는 “지난해 한 차례 공사비를 올리면서 시공사가 요구하는 항목을 반영했다”며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한 상태인데, 시공사가 일방적으로 안내문을 조합원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조합원은 입주 일정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고 있다.
다른 사업장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다. 경기 광명시 ‘철산주공8·9단지’(철산자이 더 헤리티지)는 최근 입주를 앞두고 공사비 증액 논란이 일었다. 시공사인 GS건설은 지난 1월 1032억원을 올려달라고 조합에 요구했다. 이후 5개월 가까이 조합과 시공사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다 최근 경기도 분쟁조정위원회 중재를 거쳐 520억원 증액으로 최종 타결했다.
지난달 분양에 나선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역시 공사비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다가 서울시 중재로 마무리됐다. 동작구 노량진6구역도 서울시 중재로 최근 공사비에 합의하고 조만간 공사에 들어갈 전망이다.
◇검증받아도 갈등 해소 어려워
조합과 시공사는 갈등 해소를 위해 공신력 있는 기관 등을 통해 공사비 검증에 나선다. 하지만 결과에 양쪽 모두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부산 남구 대연3구역 재건축 조합은 최근 한국부동산원에 요청한 공사비 검증 결과를 통보받았다. 앞서 시공사인 한화 건설부문은 조합에 325억원 상당의 공사비 인상을 요구했다. 검증 결과 126억원이 인정됐다.
시공사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조합 역시 공사비와 관련해 추가 협상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불만이 많다. 한 조합원은 “공사비 인상을 두고 시공사와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는 것이 불편하다”며 “외부 검증이 이뤄져도 끝이 아니어서 불안해하는 조합원이 많다”고 전했다.
최근 법원이 공사비 검증 절차 없이도 시공사와 조합이 증액에 합의할 수 있다고 판결하면서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공사비 검증이 필수인지에 대해 조합원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 총회 결의만 있으면 검증 없이도 공사비 증액이 가능하다는 판결 이후 시공사와 조합 집행부가 빠르게 합의하면 된다는 분위기”라며 “검증 과정이 비용과 시간만 늘린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안정락/유오상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