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할만하다”…채린이의 채권 투자기

1 day ago 7

채린이의 좌충우돌 채권 매수 체험기

美 휴장일 증권사 갔다가 허탕
증권사 찾아가 1시간만에 매수
높은 금리·낮은 환율·절세 효과
롯데손보 등 고금리 특수채 위험
풍선효과로 미 국채에 더 몰려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증권에서 상담사가 채권 투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증권에서 상담사가 채권 투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100달러로 연 4.38% 이자를 주는 미국 채권 매수 완료.’ 지난 5월 27일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삼성증권 파르나스금융센터WM지점을 방문한 이후 1시간 만에 이를 달성했다. 이 같은 채권 매수는 최근 대세다. 특히 금리가 높은 미국 국채가 인기다. 거래가 활발한 10년짜리 채권 금리는 최근 4.5%대, 30년물은 5%를 찍었다. 국내 예금 금리의 2배 수준이다. 예민한 투자자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이날 삼성증권을 찾았더니 채권시장 전망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증권사 김미선 선임 프라이빗뱅커(PB)는 “자산가들은 부동산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뭉칫돈을 넣어둘 안전자산으로 미국 채권을 선택하고 있다”며 “금리가 2%대인 한국 국채나 시중은행 예금 금리보다 수익률이 높은 데다 채권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차익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돼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미국이 자국 국민의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하는 ‘감세안’이 최근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그렇지 않아도 빚이 많은데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 시장에선 채권 발행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자연스레 채권값은 떨어지고 금리는 높아진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이처럼 반대로 움직인다.

고액 자산가들은 이 같은 채권 환경을 선호한다고 한다. 김 PB는 “채권 투자는 금리가 높을 때 투자해 이자를 확보한 채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환율 하락(원화값 강세)에 따라 향후 채권 매도 시 원화 환산 수익(환차익)을 추가로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과거엔 개별 채권(알채권)을 사려면 1000만원 이상 들고 와서 물량이 있는지 고객이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이젠 100달러만 있으면 미 채권을 곧바로 매수할 수 있으니, 소액 투자자들까지 채권으로 몰려가고 있다. 다만 직접 찾아오기보다는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채권 매수까지 1시간…투자등급 1등급 받아야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증권에서 상담사가 채권 투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증권에서 상담사가 채권 투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김 PB와의 상담 후 확신을 갖고 채권 계좌 개설 부스로 이동했다. 신분증을 맡기고 서류를 작성한다. 처음으로 증권사 계좌를 개설하면 각종 이벤트가 있으니 잘 챙기면 된다. 중요한 건 ‘투자성향 분석 테스트’다. 게임에서 하나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퀘스트’라고 하는데 이 테스트와 엇비슷하다.

미국 채권과 같은 해외 채권을 매매하려면 이 퀘스트에서 ‘1등급’을 받아야 한다. 다양한 질문이 나오고 사지선다형으로 답을 고른다. 1등급은 원금 손실을 감내할 수 있으며, 파생상품과 같은 어려운 금융상품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주어진다. 이날 다행히 1등급이 나왔다.

객장 직원에게 “미국이 부도날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 투자등급을 높게 받아야 하니 의아하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주식 투자는 2등급만 나와도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등급이 높을수록 투자 위험도가 높다는 뜻인데 뭔가 금융 상식상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직원은 “해외 자산의 경우 원금 손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1등급 고객에게 허용된다”고 답했다.

이어 투자에 필요한 다양한 서류 작업이 남았다. 서류에는 각종 투자 위험을 알리는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중간중간 건너뛰면서 꼼꼼히 읽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는 질문하면 된다. 요즘은 수기로 사인을 하기보다는 ‘잘 이해했음’ ‘충분히 위험을 인식했음’ 등의 문장을 고객이 디스플레이 패드 위에 꾹꾹 눌러 써야 한다. 시간이 걸렸지만 투자자 보호 장치로 이해했다.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증권에서 상담사가 채권 투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증권에서 상담사가 채권 투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만기까지 기간이 짧은 단기물이 유리하다는 조언을 받기도 했다. 올 하반기엔 채권값 상승이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PB는 “올 하반기 금리 인하가 기대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은행 규제 완화를 예고해 투자은행들이 단기채를 많이 사서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증권사 애플리케이션(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미 국채 단기물을 실제 매수하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 사실 이날 하루 전에 다른 중소형 증권사를 방문했다가 허탕을 친 것까지 감안하면 이틀이 걸린 셈이다. 26일은 미국 시장 휴장일(메모리얼데이)이어서 거래가 불가능했다.

국내에서 해외 채권 거래는 휴일을 제외하고 미국과 일본의 증시가 동시에 열리는 날에만 가능하다. 메모리얼데이여서 26일 오후 10시 30분부터 열리는 미 증시는 휴장이었다. 한국과 채권 거래 표준을 공유하는 일본 증시는 이날 열렸다. 정상 거래일이라면 같은 날 국내 채권 거래 시간(오전 9시 30분~오후 4시·삼성증권 기준)에 미 채권을 살 수 있다.

전날 채권을 매수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원하는 물량이 없어서다. 삼성과 같은 메이저 증권사는 채권 물량을 대량으로 확보해놓는다. 그러나 중소형사는 고객 기반에 따라 물량과 종류가 상대적으로 적다.

증권사와 고객이 물건을 주고받듯 채권을 거래하다 보니 증권사의 덩치가 중요하다. ‘채린이(채권+어린이)’로 대표되는 소액 투자자일수록 메이저 증권사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다. 중소형사들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관리자 통한 매매) 수수료가 더 비싸다. 보유 물량 중 일부만 앱에 올려 온라인 매매가 제한돼 있다.

은행 금리의 2배·절세·환차익까지…채권 완전 대중화

사진설명

채권은 크게 국채와 회사채, 특수채로 나뉜다. 정부가 보증하는 국채와 달리 회사채나 특수채는 법인의 부도 리스크에 따라 금리가 더 높다. 채권시장에서도 투자 위험과 수익률이 비례한다. 최근 롯데손해보험 후순위채는 대표적인 특수채다. 코로나19 시절 5%대 금리로 나와 인기를 끌었다가 롯데그룹 재무 리스크에 따라 이번에 상환이 불발돼 투자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

김 PB 역시 “무턱대고 채권의 금리 수준만 살필 게 아니라 신용등급과 상환 조건 등을 따져봐야 한다”며 “안정성은 채권의 신용등급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 금리보다 지나치게 높은 회사채나 특수채의 경우 최근 PB들이 추천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롯데손보처럼 돌발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증권에서 상담사가 채권 투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증권에서 상담사가 채권 투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이날 직접 매수한 미 채권의 이름은 ‘T 0.375 01/31/26’로서 신용등급은 ‘AA+’다. 투자자들은 채권명부터 확인하고 지레 겁먹기 마련인데, 알고 보면 세상 친절한 이름이다. T는 ‘Treasury’의 첫 글자다. 미국 재무부라는 뜻이며, 미국 정부가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란 의미다.

T 다음의 ‘0.375’는 표면금리다. 채권의 액면 가격에 대한 연간 이자 지급률을 채권 표면에 표시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표면금리는 채권 발행 시의 첫 시작 금리다. 나머지 ‘01/31/26’은 2026년 1월 31일이 만기일이란 뜻이다. 5년 만기 채권이어서 매수한 이 채권의 발행일은 2021년 2월 1일. 코로나 사태 직후라 금리가 낮았다. 이 채권은 6개월 단위로, 연 0.375%의 이자를 지급한다.

표면금리 0%대로 발행한 채권을 보유한 사람은 시장 금리가 현재 4%대로 상승했으니 보유 채권의 수요는 감소했고 가격은 떨어진다. 이 채권의 은행 환산 수익률은 4.38%. 이 수치는 은행 예금처럼 일반 투자 상품과 비교하기 위해 편의상 제공된다.

채권은 표면금리대로만 이자를 지급한다. 0%대 금리가 4%대 수익률로 바뀌는 것은 만기 시 보유했을 경우 시세차익이 포함돼서다. 금리가 올라서 가격이 쌀 때 샀으니 만기엔 높은 수익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엔 일종의 ‘수익률 착시’가 있다. 매수 후 채권 매매 창에서 ‘수익률 및 이자’란을 확인했다. 여기에 세후 수익률 3.71%이 나온다. 이것이 투자자들이 받게 되는 진짜 수익률이다. 앞서 환산 수익률은 세금을 떼지 않은 수치이고, 세후 수익률은 이자에 대한 15.4% 세율이 적용됐다.

이 채권은 앞으로 만기까지 8개월 남았다. 이 채권을 매수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8개월 내에 금리가 내려가 채권값이 많이 오르면 매도해서 자본 차익을 남긴다. 두 번째 선택지는 금리가 현 수준을 지키거나 오히려 오를 경우 8개월간 그대로 보유한다. 채권은 만기까지 보유 시 원금 보장과 쿠폰 이자를 모두 받는다.

장기 채권 ETF는 원금 손실 가능성 높아

사진설명

이 같은 채권의 장점은 국내 주식 투자자들은 물론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주식에서 채권으로 돈을 옮기는 명분을 제공한다. ‘국민주’ 삼성전자의 주가는 올해 들어 이날까지 1.1% 올랐다. 테슬라는 같은 기간 16%나 하락했다. 만기 시 원금 보장에 높은 금리, 원화값 강세로 인한 향후 환차익, 절세 효과까지 3대 호재가 채권시장을 빛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채권 투자자가 얻는 두 가지 이익은 가격 상승과 이자소득이다. 이 중 채권값 변동에 의한 시세차익에 대해서는 비과세다. 이자소득에 대해서만 15.4%의 이자소득세를 부과한다. 김 PB는 “채권을 대량 보유해 시세차익이 나더라도 애초에 과세 대상이 아니어서 세금을 아낄 수 있는 것은 기본”이라며 “채권으로 인한 이자소득이 연 2000만원이 넘지 않도록 채권 수량을 늘려가면 종합소득과세나 건강보험료가 오르는 것도 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채권 투자가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앞서 제시한 호재가 모두 반대로 갈 경우 만기까지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묶일 수 있다. 반대 시나리오는 시장 금리 상승으로 채권값이 하락하면서 계속해서 환율이 하락하는 경우(달러 대비 원화 강세 지속)다.

또 채권 매도 시엔 주식처럼 투자자가 직접 판단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채권 매매 앱에선 만기 전에 매도 시 종합수익률을 개인투자자가 정확히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지점에 전화를 해 현 수준에서 채권을 파는 것이 만기 보유보다 더 유리한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래의 편의성 때문에 채권 관련 상장지수펀드(ETF)가 대유행 중이다. 최소 거래대금이 없다 보니 소액 투자자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그러나 알채권과 달리 만기가 없다 보니 원금 보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주식과 비슷한 위험자산이란 뜻이다.

20년 이상의 장기 채권을 묶어놓은 미 채권 ETF인 ‘TLT’에 서학개미들은 8억달러(약 1조원)나 투자했다. 이 TLT에는 코로나 시기인 ‘제로금리’(시장 금리 0%대) 시절 발행 물량이 많이 포함돼 있다. 이후 금리 급등에 따른 가격 하락을 피할 순 없었다. TLT 주가는 올 들어 -3%, 최근 1년 -6%를 넘어 최근 5년 기준 반 토막(-48%)이 났다.

미 채권을 담고 있는 국내 상장 ETF의 경우 연금저축펀드 등 절세 계좌로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유의할 점이 많다. 장기물 위주의 채권 ETF는 가격 변동성도 높고, 코로나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향후 주가가 상승하더라도 알채권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채권형 펀드나 채권형 ETF에 투자할 경우에는 시세차익과 분배금(배당·이자)에 대해 모두 15.4% 세율로 과세한다. 펀드나 ETF 가격이 올라 시세차익을 얻으면 ‘보유기간과세’라는 명목으로 세금을 떼간다. 알채권은 당초에 이자소득에서만 세금을 떼가도록 정해져 있어 태생부터 절세 상품이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