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용’ 지뢰?[임용한의 전쟁사]〈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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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숨진 중국 산시성의 고산지대 오장원 근처에 사마의의 주둔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이곳을 탐사했더니 최근 세운 사당과 비석이 있었는데, 여기가 삼국지에 나오는 ‘호로곡’이라고 적혀 있었다. 삼국지 유적이자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그러나 너무 나갔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계략으로 일종의 지뢰가 매설된 호로곡에 갇힌 뒤 불길이 번지다가 죽기 직전에 비가 내려 목숨을 구한다. 그 호로곡은 가상의 지명이다. 삼국시대에는 화약도 지뢰도 없었다. 화약이 발명된 뒤 화약을 땅속에 묻었다가 폭발시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병자호란(1636∼1637년) 때 남한산성에서 문신 정뇌경이 병서에서 본 지뢰포를 땅에 묻자고 제안했다. 인조는 혹했지만 무장들은 고개를 저었다. 화약을 상자에 넣어 땅에 묻으면 습기로 금세 상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순식간에 폭발시킬 격발장치도 없었다. 당시 기술로는 사용 불가능한 무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사막의 여우’로 불리며 전과를 올린 독일 장군 에르빈 로멜은 지뢰의 효용성을 일찍 알아챘다. 1944년 프랑스 노르망디 방어사령관으로 부임했을 때, 연합군 상륙을 방해하는 값싸고 효율적인 무기는 지뢰라고 판단했다. 그는 지뢰 400만 개를 요구했지만, 생산 순위에서 밀렸다. 로멜의 계획대로 지뢰가 매설됐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노르망디에서 지뢰 제거 작업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뢰의 단점은 적이 밟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수동적인 무기다. 그러다 보니 지뢰는 방어용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하지만 전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타국의 영토, 아군 시설 앞에 부비트랩(위장폭탄)으로 설치한다면 방어용이라고 할 수 없다. 전쟁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적의 도발에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굴종적인 자세는 최악의 선택이다.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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