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판교 도로 위에 중국의 포니AI(Pony.ai)가 로보택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국 기업의 진출이 아니라 한국 자율주행 산업의 현주소를 냉정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중국 자율주행 기업들이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는 동안, 한국은 정체되고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중국은 이미 바이두(Baidu)의 자율주행 플랫폼 '아폴로(Apollo)'로 1억km 이상의 주행 데이터를 축적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우한과 베이징 등 주요 도시에서 로보택시 상용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2024년 말까지 전국적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72만km의 제한적인 데이터 축적에 그치며 서울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인 테스트 운행만을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격차의 원인은 단순히 자본이나 기술력 부족이 아니다. 한국의 자율주행 산업이 처한 상황은 구시대적인 규제, 대기업 중심의 폐쇄적 생태계, 그리고 혁신 부재로 인한 '갈라파고스화'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양질의 데이터 확보를 막아 인공지능(AI)의 성장을 제한하고, 택시업계와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로봇택시 등 핵심 서비스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저렴한 제조 비용, 방대한 데이터 수집 능력, 스마트시티와의 통합된 생태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바이두의 RT6 차량은 제조 원가가 이미 3만달러 이하이며, 엔드투엔드(End-to-End:E2E) AI 모델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차량과 인프라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스마트시티 전략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도 중국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강력한 잠재력이 있다.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5G 통신 인프라와 글로벌 표준을 주도할 수 있는 자동차용 반도체 기술이다. 특히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이미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에 필수적인 자율주행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으며, 초저지연 5G 네트워크는 차량 간 협력 자율주행을 실현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한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차량 중심의 접근법이 아니라 '인프라 우선(Infrastructure-First)' 전략을 적극적으로 채택해야 한다. 도로와 통신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 차량 AI 성능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이다. 이미 한국의 서울로보틱스(Seoul Robotics)가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또 정부 주도로 'K데이터 트러스트'를 설립해 데이터를 공공자산으로 관리하고,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이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데이터 독점을 막고 혁신적인 기술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한국은 또 글로벌 사이버보안 표준 개발과 인증을 통해 차량 데이터 보호 및 신뢰성 있는 기술 환경을 구축해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중국산 커넥티드 기술에 대한 안보 우려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를 역으로 활용해 한국이 기술적 신뢰성을 강조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 정부는 자율주행 데이터 활용 특별법 제정과 로보택시 등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의 규제 완화를 서둘러야 한다. 산업계 또한 폐쇄적 생태계에서 벗어나 개방형 플랫폼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생태계 전체의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세종 스마트시티와 부산 에코델타시티 같은 도시들을 완전 상용화된 자율주행 모빌리티 특구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한국의 스마트 인프라, 데이터 관리, 사이버보안 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기존의 관성을 고집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고 기술 식민지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그러나 혁신적인 규제 개혁과 개방적 협력을 통해 글로벌 '플랫폼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자율주행 산업의 미래는 지금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달려있다.
유승모 엠큐닉 대표이사 smyoo@mqn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