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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투자자금이 신흥국 증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 하락과 재정적자 우려에 ‘셀 아메리카’(미국 자산 매도) 바람이 불면서다.
ETF닷컴에 따르면 신흥국 증시에 투자하는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인 ‘아반티스 이머징 마켓 에쿼티’(AVEM)에 최근 1개월 동안 11억560만달러(약 1조5266억원)가 순유입됐다. 미국 외 국가·권역에 투자하는 ETF 가운데 이 기간 순유입액이 가장 많았다. 올초부터 미국 증시 대안으로 주목받은 ‘뱅가드 FTSE 유럽’(VGK·9억8740만달러) ETF를 뛰어넘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24개 신흥국의 중대형 종목을 담은 MSCI 신흥국지수는 연초 대비 전날까지 8% 상승했다. 같은 기간의 미국 S&P500지수(-0.4%) 수익률을 크게 추월했다. 최근 수년간 미국 증시가 뛰고 신흥국 증시는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했던 것과 대비되는 수치다.
신흥국 증시가 미국을 웃도는 성과를 낸 건 불확실성이 커진 미국을 대체할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가운데 대규모 감세 법안은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최근 재정적자 확대를 우려하며 신용등급을 낮추자 미국 주식과 국채 시장에서 ‘자금 이탈’ 움직임이 일었다.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신흥국 주식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다”고 단언했다. JP모간은 미·중 무역 긴장 완화와 매력적인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을 근거로 신흥국 증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올려 잡았다.
맬컴 도슨 글로벌X 신흥시장 상장지수펀드(ETF) 전략 책임자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보다 저조한 성과를 보인 신흥국 증시는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며 “약달러 및 저평가 국면은 신흥국 증시에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환차익을 기대하며 신흥국에 투자하기 때문에 달러 약세 국면에 신흥국 투자액을 늘리려는 경향이 있다.
중국, 인도 증시 '톱픽'
전문가들은 특히 중국과 인도 증시를 눈여겨보라고 조언했다. 정부가 경기 부양 의지를 내비치는 데다 미국의 관세 정책 충격도 당초 예상만큼 크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중국 증시는 올 들어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정부의 강력한 내수 부양책이 관세 충격을 상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중국 펀드의 연초 대비 수익률은 평균 3.13%로 아시아 신흥국 펀드 중 최고였다. 중국 정부는 올해 ‘이구환신’ 규모를 작년 대비 두 배로 늘렸다. 이구환신은 노후 제품을 새 제품으로 교체하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소비 진작 정책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압박 수위가 높아질수록 재정 지출을 늘려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국 정부가 ‘증시 안전판’ 역할을 하는 점도 긍정적이란 평가다. 중앙후이진 등 중국 국부펀드는 지난달 ETF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20조원 이상을 증시에 투입했다. 신승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역대 처음으로 증시 안정화가 공식 언급됐다”며 “당국의 부양 의지는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관세 전쟁 와중에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 주목받는다. 미국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후 애플은 아이폰 대체 생산지로 인도를 점찍었다. 시드 상비 아문디자산운용 신흥국 주식리서치 책임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신흥국 대비 밸류에이션이 높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히지만 높은 경제성장률이 이를 꾸준히 정당화하고 있다”며 “인도 내국인이 소액 적립식 계좌인 SIP를 통해 증시 수급을 탄탄히 받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 자금 유출입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