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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를 치어 사망케한 버스 운전기사가 형사판결에서 무죄를 받았어도 그를 해고한 게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A씨가 과거 18건에 달하는 교통사고를 유발한 점 등을 들어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 있는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형사판결에서 받은 무죄가 해고 징계 사유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봤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고법 제1행정부는 최근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2022년 10월 광주의 한 사거리에서 시내버스를 몰던 중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보행신호가 들어오자 횡단보도 전의 차도를 통해서 무리하게 건너려 한 피해자와, 적색신호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A씨의 운행이 겹친 사고였다. 피해자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차량 내 승객 2명도 다쳤다.
A씨의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A씨는 입사한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총 18건의 교통사고를 저질렀고 근무정지, 3개월 정직 등 징계를 여러번 받았다. 이는 이 회사 운전기사 중 가장 많은 사고 건수였고 피해액만 1억7500만원에 달했다. 심지어 이 사고 직전에도 시내버스를 급출발하여 차내 승객이 넘어져 전치 12주의 척추압박골절상을 입게 한 적이 있다.
A씨는 사고를 낼 때 마다 반성문과 경위서를 제출했고 안전교육도 받았지만 그때 뿐이었고 안전불감증은 바뀌지 않았다. 되레 이번 사고 전 한국교통안전공단 운전행동 조사 결과에 따르면 A씨의 안전운전 수준은 다른 기사들과 다르게 '매우 위험' 수준이었다.
A씨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결국 해고 처분을 받았다. 이에 A씨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가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하자 A가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재판과정에서 A씨가 이 사고와 관련한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게 쟁점이 됐다. ATlsms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됐지만 형사 법원은 “전방 좌우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무죄를 선했다. A씨는 "회사 취업규칙에 ‘고의 또는 부주의로 중대한 사고를 발생하거나 재산상 손해를 끼친 자'를 해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형사판결서 무죄를 받았으므로 징계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을 뒤집었다. 법원은 "무죄판결이 곧 징계사유의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형사판결과 무관하게 회사 징계사유인 ‘부주의로 중대한 사고를 발생한 자’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A씨의 운전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사고지점은 ‘사고 다발 지역’으로 분류돼 있었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주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재판부는 “운전자가 전방의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를 인지하고 감속했더라면 사고를 회피하거나 충격 강도를 줄일 수 있었다”며 “사고는 보행자의 무단횡단과 운전자의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부주의로 중대한 사고를 발생시킨 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징계도 과하지 않아고 봤다. 재판부는 “수차례 교육과 징계를 통해 개선 기회를 부여했으나 A씨는 여전히 위험운전 습관을 유지했고, 개선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해고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