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AI 추경에 필요한 두 가지

4 hours ago 1

한국 고유 WBL 개발 절실, AI 반도체 시장 활성화 효과도
정부 주도 투자만으론 한계…민간 R&D·인재육성 늘려야

  • 등록 2025-04-22 오전 5:00:00

    수정 2025-04-22 오전 5:00:00

[배경훈 LG AI연구원장] 정부가 총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안에는 대규모 재해·재난 대응과 소상공인 및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항목이 포함됐지만 필자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인공지능(AI

배경훈 LG AI연구원장(사진=LG)

) 경쟁력 강화를 위한 1조 8000억원 규모의 예산이다. 이 예산은 대규모 AI 인프라 확충과 AI 인재 육성,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 편성됐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전체 예산 중 1조 6000억원 이상을 AI 인프라 확충에 배분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2월 정부가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논의를 진행한 이후 약 두 달 만에 추경 계획안에 반영한 결과로, AI 인프라 확충의 시급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1만 3000장 이상의 첨단 GPU를 연내 추가로 즉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국회 심사에서도 해당 내용이 큰 지연 없이 승인될 것이라 기대한다.

대한민국 AI 산업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첨단 GPU를 빠르게 확보하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확보한 GPU는 특히 ‘월드 베스트 거대언어모델’(World Best LLM, WBL) 프로젝트에 우선 활용될 전망이다. WBL 프로젝트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한민국의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해 국내 AI 기업의 역량을 강화하려는 정부 주도 사업이다. GPU 보유량이 상대적으로 극히 부족한 국내 현실을 반영했고 자원의 분산보다는 집중 지원하는 방식을 선택한 정책 방향과도 일치한다.

WBL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AI 생태계 활성화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단순히 국가 전략 자산으로서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확보하는 것 이상의 의미다. 협업과 경쟁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상용화 허용 라이선스로 공개하면 다양한 기업과 기관이 AI 관련 서비스와 제품을 개발하며 산업 생태계를 더욱 확장할 수 있다. 올해 초 중국의 딥시크(DeepSeek)는 R1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눈에 띄는 건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이 모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톈진시는 화웨이와 공동 설립한 AI 컴퓨팅 센터에 R1 모델을 도입해 하드웨어 투자 비용을 절감하고 성능을 향상했다. 메이디(Midea)는 에어컨, 화웨이는 스마트폰 비서에 해당 모델을 적용했다. 20여 곳의 자동차 제조사는 차량 내 음성 비서 기능에 R1 모델을 탑재하기도 했다. 모델 출시 이후 단 몇 개월 만에 폭넓은 활용 사례가 등장한 것이다. 중국의 사례는 WBL 모델 개발 이후 국내에서도 다양한 AI 활용 사례를 빠르게 확산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아가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은 국내 AI 반도체 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WBL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하는 모델은 해당 모델 구동에 최적화한 반도체 수요를 창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LG가 개발한 파운데이션 모델 ‘엑사원’(EXAONE)을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의 레니게이드(RNGD) 칩에서 구동하는 시연이 보도된 바 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AI 반도체 기업과 국내 AI 기업 간 시너지를 창출하고 나아가 AI 반도체 시장과 AI 서비스 생태계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정부 주도의 투자만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기업과 기관 등 민간 부문의 연구개발과 투자, 인재 육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번 추경안이 민간 투자를 촉발할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정책의 실행 속도를 높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민간 부문의 참여를 저해하는 규제 완화다. 예컨대 국가 AI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에 맞춰 민간에서도 다양한 데이터센터 건설이 이뤄져야 한다. 수도권 규제 제한이나 전력망 확충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민간 공급이 더욱 활성화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의 AI 기술력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왔다. 기업들은 치열한 연구개발을 통해 경쟁력 있는 모델과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였고 정부는 글로벌 AI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을 마련해 왔다. 이번 추경과 관련 정책들이 대한민국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도약대가 되기를 기대한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