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쌀 소비량이 일시적으로 급증한 반면 한국의 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한국이 35년 만에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게 됐다.
21일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일본 쌀 수요 증가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로 인한 ‘스시(초밥)’와 ‘오니기리(주먹밥)’ 소비가 급증한 영향이다.
일본의 외국인 관광객이 2023년 6월부터 1년간 소비한 쌀은 약 5만1000t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배 늘어났다. 초밥과 덮밥 등 일본 주요 음식이 쌀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 관광객들의 수요가 일본 쌀 시장에서 공급 부족을 초래했다. 내국인 쌀 수요는 크지 않았다. 일본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12년 56.2㎏에서 2022년 50.9㎏으로, 10년간 약 10% 줄어들었다.
다만 △기후 악화에 따른 생산 감소 △정부의 비축미 방출 지연이 맞물리면서 쌀값 상승에 힘을 보탰다. 실제로 일본은 이상고온으로 인해 작황이 부진해 2023년 쌀 생산량이 1년 전보다 9만t이 줄어든 661만t을 기록했다.
공급부족 우려가 확산하면서 소비자와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 쌀값 상승세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일본 기상청이 지난여름 대규모 지진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가정용 쌀 구매가 급증해, 작년 8월 일본의 쌀 구매량은 2023년 동월 대비 29% 증가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쌀값 대응에 실패했다. 쌀 구매량이 폭증하던 지난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사태를 관망하다 올해 3월에야 정부 비축미 21만t을 방출했다. 이후 10만t을 추가 공급한다고 했지만, 이미 가격이 한참 오른 뒤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간한 해외시장동향 보고서는 “많은 (일본 쌀) 시장 관계자들이 산지 쟁탈전을 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증가했음에도 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라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한편 한국산 쌀이 일본으로 수출되자 벼 재배면적을 줄여나가는 정부 정책에 대해 일부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일본과 한국의 쌀 시장 구조는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만성적인 과잉생산 구조를 갖고 있어, 시장 수요에 맞춘 감산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5.8㎏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1998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처음 100㎏ 아래로 떨어진 후 2019년부터는 50㎏대에 머물렀다. 2023년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52.9g으로 즉석밥 한 개(200~210g)보다 적은 양이었다.
한국의 식생활이 밀가루, 고기, 채소 중심의 식단으로 전환하고,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혼밥 문화와 외식·배달 증가로 패스트푸드, 빵, 면 요리 소비가 늘어나 쌀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22년 기준 일본의 쌀 재고율은 소비량 대비 12% 수준이었지만 당시 한국은 34.7%에 달했다. 서진교 GSnJ 인스티튜트 원장은 “국내 쌀 재고는 올해 말 150만t을 넘을 가능성이 크며, 200만t을 초과할 경우 가격 하락 압력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한국산 쌀의 일본 수출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농협이 일본 현지에서 판매 중인 한국산 쌀은 10㎏당 약 9만원으로, 일본산 쌀(10㎏ 기준 8만원대 중반)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크지 않다. 특히 일본 정부가 전략적으로 수입하는 물량의 경우 연 77만t까지 무관세인데, 이들은 대부분 미국, 태국, 호주산이 차지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농협은 지난 10일부터 한국 농협 온라인 쇼핑몰과 도쿄 내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 슈퍼 등에서 8일 통관을 마친 전남 해남산 쌀 2t을 판매했다. 농협은 다음달 중순 10t을 추가 공급하고 나머지 10t도 출하 시기를 조율 중이다. 현지에서는 일본 내 쌀값 상승세가 지속되자 현지 소비자들의 선제적 구매가 큰 탓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