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다 츄이 크리스티 부사장 … 아태 이브닝경매 헤드
"미술시장도 갈수록 양극화
인상주의 등 초고가 시장과
50만달러 미만으로 나뉘어
박서보·이우환·이배 인기
韓작품 찾는 국적 다양해져"
미술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20·21세기 미술이다. 그중에서도 시장 가치가 높은 핵심 작품들은 글로벌 경매사들이 진행하는 이브닝 경매에 나온다. 이브닝 경매를 통해 세계 미술 시장의 분위기와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9월 세계 최대 경매사 중 하나인 크리스티(Christie's)의 아시아태평양 본사(홍콩)에서 20·21세기 미술 이브닝 경매 헤드로 발탁된 에이다 츄이 부사장은 장기화된 글로벌 경제위기로 한동안 침체됐던 미술 시장의 분위기가 올해 들어 분명한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진단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인근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츄이 부사장은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컬렉터들이 더욱 신중하게 작품에 접근하고 더욱 선별된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도 "확실히 시장은 안정화되고 있고 사람들은 이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다시 미술품을 구매하러 오고 있다. 물론 여전히 신중하지만 충분히 활발하고 참여도가 높다"고 전했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나타난다. 크리스티에 따르면 올해 3월 홍콩 이브닝 경매의 경우 90% 이상 낙찰률을 보였고, 낮은 추정가 대비 실제 낙찰가 비율을 나타내는 인덱스 값도 112%를 기록했다. 츄이 부사장은 "호황 때의 '패닉 경쟁'은 아니지만 상당히 좋은 경쟁 끝에 작품이 거래됐다고 볼 수 있다"며 "한동안 이 값이 100% 미만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시장은 분명 회복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부 희소성이 높은 작품들은 경기침체 속에서도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올해 5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에서 진행된 이브닝 경매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Peupliers au bord de l'Epte, crepuscule'(1891)가 무려 4296만달러에 낙찰돼 모네 작품의 역대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앞서 지난 3월 홍콩 이브닝 경매에서도 장미셸 바스키아의 'Saturday Night'(1984)이 1450만달러에 낙찰돼 올해 아시아 지역에서 거래된 20·21세기 미술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츄이 부사장은 "작품의 품질과 희소성, 소장 이력만 확실하다면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모네의 '포플러' 연작은 단 24점밖에 존재하지 않는데 대부분은 박물관에 소장돼 있어 경매에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같은 뉴욕 경매에서 4750만달러에 낙찰된 피에트 몬드리안의 1922년작 역시 미국 반스&노블 서점 창립자의 유명 컬렉션에서 나온 작품으로 구매 경쟁이 붙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의 수요는 더욱 양극화된 양상을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츄이 부사장은 "컬렉터들의 관심이 모네, 몬드리안 같은 초고가의 '톱 엔드' 작품과 50만달러 이하의 선별된 작품에 집중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전자의 경우에는 '지금 이 그림을 놓치면 최소 10년 동안은 다시 못 만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의 품질과 희소성에 초점을 맞추고, 가격 민감성이 높은 후자의 경우에는 좀 더 가격적인 매력에 초점을 맞춰 마케팅을 한다"고 전했다.
선호하는 작가 군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는 "변동성이 큰 자본 시장에서 사람들은 미술품 수집을 통해 안정성을 추구하려고 한다"며 "일례로 요즘 컬렉터들이 인상주의 작품을 많이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작품이 50년 이상 시장에서 거래된 안정적인 작가들이고, 이 카테고리에 있는 작품은 100% 낙찰률과 높은 낙찰가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편에서는 젊은 컬렉터들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작품, 미디어 아트 등 새로운 매체나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패션 관련한 작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츄이 부사장은 세계 미술시장에 잘 알려진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그는 "3월 홍콩 이브닝 경매에서도 박서보, 이우환, 이배 등 한국 작가 작품이 100% 낙찰됐고, 지난해 9월엔 김환기 작가의 희귀 전면점화가 7200만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며 "최근에 특히 한국 작가 작품 비딩에 참가하는 컬렉터들의 국적이 매우 다양해졌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한국 작가들은 미술시장에서 꾸준한 안정성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술시장에서 한국과 서울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츄이 부사장은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특히 성장세가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 컬렉터들의 지출 금액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5배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는 "서울은 새로운 컬렉터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아티스트들과 미술관, 국내외 갤러리, 기업 문화재단 등 미술계가 매우 체계적이고 균형 잡힌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며 "강력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지로 음악, 연예, 패션, 디자인 등과 미술 분야가 시너지를 내기도 좋은 환경"이라고 호평했다.
[송경은 기자 / 사진 이충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