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마다 조금 긴장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다음 질문이다. “어떤 곡을 좋아하세요?” 정말 좋아하는 곡이 떠오르는데, 그게 마침 베토벤의 ‘운명’이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처럼 누구나 아는 곡이라면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기 직전 잠깐 멈칫하게 된다. 너무 뻔한 대답처럼 들리지 않을까, 클래식을 겉핥기로만 들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클래식을 오래 들어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나 좀처럼 연주되지 않는 작곡가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쪽이 조금 더 특별하게 들리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음악은 그저 좋아하면 되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취향에도 은근한 서열이 생긴다. 널리 알려진 음악은 입문자를 위한 것으로, 낯선 음악은 더 깊은 취향의 증거로 여겨진다. 좋아하는 작곡가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대신 브루크너나 바그너를 댄다면, 그 이름만으로 한층 깊이 있는 애호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좋아하는 곡 하나로 그 사람의 내공까지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명한 음악은 정말 가볍고 단순할까. 오히려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토록 오래 이 음악을 사랑해 온 이유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 듣는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면서도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은 생각보다 드물다. 한두 번 듣고 잊히는 음악과 수십 년을 건너 다시 연주되는 음악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익숙하다는 것은 단순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게 들리도록 만드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공이 든다. 익숙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그 균형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 그렇다. 첫 네 음은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다. 짧고 단순해서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음형이다. 그런데 바로 그 단순함 속에 비밀이 있다. 베토벤은 이 짧은 리듬 동기를 작품 전체의 재료로 삼아 끊임없이 변형하고 확장한다. 네 음은 때로는 위협적으로, 때로는 숨죽인 속삭임으로 모습을 바꾸며 악장 곳곳에 되돌아오고, 작은 동기 하나가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거대한 건축물 같은 음악을 완성한다. 듣는 사람이 이 구조를 다 알아챌 필요는 없다. 귀는 이미 그 짜임새를 따라가고 있고, 우리는 그 정교함을 의식하지 못한 채 음악에 빠져든다. 쉽게 들리는 것은 단순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치밀하게 짜였기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의...
명곡이 오래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허명현의 클래식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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