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유준하 기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증연구를 기반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구매력이 부족한 실수요자에게 주택 공급을 원활히 하려면 실수요와 투기수요를 실증적으로 구분해야 하는데, 이는 앞으로 학계에서도 깊이 있게 들여봐야 할 이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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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
시장 설계와 경매 이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최연구 컬럼비아대학교 석좌교수는 2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서 이데일리와 만나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최 교수는 지난 2013년 ‘예산 제약이 있는 경제주체에게 자원 배분하기’란 논문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학 학술지(The Review of Economic Studies)에 게재, 개인들이 충분한 구매력을 갖지 못한 경우 시장경쟁체제는 사회적으로 비효율을 낳는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정부의 개입이 시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정책 정당성을 입증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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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구 컬럼비아대학교 석좌교수가 22일 서울 코엑스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유준하 기자) |
“로또 청약 같은 추첨제 방식은 불가피”
최 교수는 “주택은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구매력이 크게 작용하는 ‘덩치 큰 재화’”라며 “그렇다 보니 구매력이 충분치 않은 실수요자가 시장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경쟁시장 원리로 부동산 시장을 방치할 경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현재 ‘로또’ 청약이라고도 불리는 국내 청약 제도에 대해선 일종의 무작위 배분, 추첨은 불가피한 장치라고 짚었다. 그는 “분양가 상한제하에서는 공급 부족과 과잉 수요로 인해 로또 청약과 같은 추첨제 방식이 불가피하다”면서 “이 과정에서 투기 수요가 유입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분양가 상한제란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를 원가에 일정 이윤을 더해 규제하는 제도로, 지난 2020년 7월29일 전면 시행됐다.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하며 입주자는 최대 10년의 전매제한 기간 주택을 처분할 수 없다.
최 교수는 무엇보다 투기수요를 구분해 내는 것이 우선이며 이 과정에서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정치는 여전히 여론이나 직관에 의존한 대책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면서 “투기 수요가 실제 어느 정도인지, 연령대별 주택 실수요는 어느 정도이며 그들의 주택 소유 형태는 어떻게 다른지를 실증적으로 검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청약 가점제의 문제도 지적했다. 최 교수는 “무주택 기간이 길수록 점수가 올라가는 구조는 50~60대가 돼서야 내 집 마련이 가능하게 만든다”면서 “오히려 신혼부부나 청년층에게 불리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무주택 기간 점수에 상한선을 두거나, 추첨제와 가점제를 조합해 실수요자에게 더 기회가 돌아가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 행정 데이터 개방성은 다소 아쉬운 측면”
최 교수는 인터뷰 서두에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실증적인 수치와 데이터를 말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학자로서 무거운 마음”이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국내 부동산 시장 분석을 위한 행정 데이터 접근의 한계는 다소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 교수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 대해 디테일한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싶었으나 접근성이 제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과거 뉴욕시가 모든 행정 데이터를 학자들에게 개방해 정책 연구를 활성화한 사례처럼, 한국도 연구자들에게 보다 원활하게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정책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데이터를 숨길 게 아니라, 오히려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국 부동산 시장은 전세 제도가 있는 굉장히 독특한 시장인 만큼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봤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을 빼면 전세 제도가 있는 나라가 없는데, 이게 또 고착화되고 안 바뀌고 있다는 점도 조금 분석을 해보고 싶다”면서 “실수요자와 부동산 재화간의 제도적인 매칭 문제 해결을 위해서 연구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다음 연구주제의 영감을 받았다”면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연구를 보다 깊게 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