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일성으로 與野에 쓴소리
“국민은 극렬 대립 원치 않아”
협치상징 보라색 넥타이 착용
트럼프 통상 대응·산불 진압
시급한 현안 챙기며 업무개시
마은혁 임명·金여사 특검 등
민감한 정치적 과제들 산적
‘행정의 달인’이 87일 만에 돌아왔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즉각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해 국정 수습에 나섰다. 여야 협치를 상징하는 보라색 넥타이를 매고 등장한 한 권한대행은 복귀 일성으로 “이제 좌우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오로지 우리나라가 위로, 앞으로 발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국정 과제부터 우선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 권한대행의 보라색 넥타이는 과거에도 국회 시정연설이나 야당 예방 등 협치가 필요한 자리마다 등장했다. 복귀 첫날 이 넥타이를 맨 데에는 국정 정상화를 위해 정쟁을 멈추자는 호소가 담겨 있는 셈이다.
이날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과 이어진 대국민 담화에서도 한 권한대행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도어스테핑 자리에선 “국민들은 이제 극렬히 대립하는 정치권에 대해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확실하게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국민 담화에선 “여야와 정부가 정말 달라져야 한다. 저부터 그렇게 하겠다”며 “대한민국이 지금의 위기 국면을 헤치고 다시 한번 위와 앞을 향해 도약할 수 있도록 여야의 초당적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반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여부에 대해선 “곧 또 뵙겠다”며 즉답을 피하며 국회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이나 각종 쟁점 법안 등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대국민 담화문에도 윤 대통령의 이름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한 권한대행은 곧바로 통상 현안을 챙기고 산불과 관련해 긴급 지시를 내리며 쉴 틈 없이 움직였다. 통상·외교 전문가인 한 권한대행이 직무에 복귀하며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나 민감국가 지정 문제 등에 대한 대응 체계가 정비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이날 오전 도어스테핑을 마친 한 권한대행은 곧바로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을 방문해 행정안전부·산림청·소방청 등에서 보고를 받고 산불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한 권한대행은 추가로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고, 산불 진화 인력의 안전 관리 확보를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오후에는 직접 경북 의성을 찾아 재난 현장을 둘러보고 이재민을 위로했다.
한 권한대행은 출근길에 “큰 산불로 고통을 받고 계신 분들을 뵙고, 특히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 제가 직접 손으로 위로의 편지를 드렸다”며 “정말 가슴 아픈 일이고 그분들의 명복을 빌어 마지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한 권한대행은 관계부처에 안보·치안 관련 긴급 지시를 하달하며 “엄중한 상황 속에서 국민들이 불안해 하시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국정 운영에 만전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한미 공조와 우방국 협조를 공고히 하는 한편 우리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에 변함이 없음을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어 한 권한대행은 본인이 직무정지된 기간에 권한대행직을 수행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20여 분간 별도 티타임을 가졌다. 곧이어 오찬을 겸한 국무위원 간담회를 진행했다. 최 부총리는 이날 간담회장에 들어서면서 동료 위원들을 향해 “드디어”라고 말하며 만면에 미소를 짓기도 했다.
한 권한대행은 국무위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대통령과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다 같이 탄핵소추된 초유의 상황에서 내각이 안정된 국정 운영을 위해 흔들림 없이 노력해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생과 직결된 주요 현안을 속도감 있게 진척시키는 것이 내각의 사명”이라며 “외교, 안보, 경제, 통상, 치안, 행정 등 국정의 모든 분야가 원활하게 작동하느냐가 국무위원과 전국 공직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한 권한대행의 ‘초당적 행보’가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당장 탄핵 위기를 초래한 마 후보자를 임명하라는 야당의 압박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마 후보자 임명을 거부하면 다시 한 권한대행을 탄핵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국회를 이미 통과한 김건희·마약 상설특검은 거부권 행사 대상은 아니지만 지체 없이 특검 추천을 의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한 권한대행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과 국민연금 개정안도 일각에서 재의요구권 행사 목소리가 제기돼 한 권한대행이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