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지나갈 틈[이준식의 한시 한수]〈383〉

1 week ago 17

무엇으로 이 무더위를 식힐까. 뜰 안에 고요히 앉아 있네.눈앞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고, 창 아래로 맑은 바람 불어오네.마음 고요하니 열기는 흩어지고, 방이 비었으니 서늘함이 생겨나네.이 순간 몸과 마음 절로 흡족하니, 이 즐거움 남과 나누기 어렵구나.(何以消煩暑, 端坐一院中. 眼前無長物, 窗下有清風.熱散由心静, 凉生爲室空. 此時身自得, 難更與人同.)―‘더위를 식히며(消暑)’ 백거이(白居易·772∼846)한여름 백거이는 더위를 피해 숲이나 강으로 나서는 대신 뜰 안에 조용히 앉았다. 눈앞에는 군더더기 물건이 없고, 창 아래로 맑은 바람이 들어왔다. 화려한 피서 도구도, 특별한 비법도 없었다. 그저 빈방과 정좌한 몸뿐이었다. 이 시에서는 ‘없음’이 제법 큰일을 한다. 방 안이 단출하니 바람이 머물 자리가 생긴다. 마음도 그와 비슷하다. 생각을 자꾸 보태면 한 줄기 바람도 비집고 들어오기 어렵다. 백거이는 마음의 집착을 내려놓고 더위가 지나갈 틈을 내주었다. 마음이 고요하다고 더위가 가시는 건 아니다. 다만 날씨가 뜨거우면 몸이 달아오르고, 몸이 달아오르면 마음도 덩달아 부산해진다. 거기에 짜증까지 얹으면 더위는 날씨가 아니라 사건이 된다. 백거이는 그 사건을 크게 만들지 않았다. 움직임을 줄이고 소란을 거두자 평범한 바람 한 줄기도 제 얼굴을 드러냈다. 바깥의 열기는 그대로였지만, 더위가 마음까지 차지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가 얻은 서늘함은 기온이 아니라 더위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자리였을 것이다. 이준식의 한시 한 수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현장 함께 미래 라운지 민선 9기 구청장에게 듣는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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