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소액절도 5년새 2배로…“생계형 많지만 청소년 일탈도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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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만원 이하 절도범죄 10만7138건…경제위기 반영
아픈 손자 먹이려 고기 훔친 할머니 등 ‘현대판 장발장’
무인점포 증가-중고거래 활성화는 청소년 범죄 부추겨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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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회에 온 어머니가 너무나 위축되어 있는 모습이 짠해서 기억이 나네요.”

관악경찰서 경미범죄심의위원회 심사위원인 조범석 법률사무소 석상 변호사가 지난해 말 생필품 10만 원어치를 훔친 일로 심의위원회에 회부된 30대 중반의 여성을 떠올리며 8일 말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이 여성은 어린 아들을 위해 마트에서 라면과 통조림, 수건 등을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여성은 직업이 없었고 홀로 아들과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성은 심사위원회를 거쳐 즉결 심판으로 경미한 처분을 받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를 맞았던 2009년 이후 감소세였던 10만 원 이하 소액 절도 범죄가 최근 다시 급증하고 있다. 경제 위기와 무인점포 증가 등 구조적 변화가 맞물리며 ‘현대판 장발장’이라 불리는 생계형 범죄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5년 만에 2배 증가, 늘어나는 장발장

8일 동아일보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경찰청으로부터 확보한 ‘10만 원 이하 절도 범죄 현황’에 따르면 10만 원 이하의 소액 절도 범죄는 2019년 5만440건에서 지난해 10만7138건으로 5년 새 2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2020년엔 5만5252건, 2021년 5만7296건, 2022년 8만3684건, 2023년엔 10만3726건으로 2020년대 들어 꾸준히 증가했다. 세계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소액 절도 범죄가 15만9413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후 감소 추세였다가 다시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상당수가 한부모 가정이나 노인 등 취약계층의 범죄라고 분석했다. 고물가, 취업 한파 등에 취약계층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생계형 범죄가 늘었다는 설명이다. 올 1월 설 연휴 당시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한 마트에선 장애가 있는 손주를 홀로 돌보는 80대 여성이 4만 원어치 상당의 한우 국거리와 LA 갈비를 훔치는 일이 발생했다. 이 마트를 운영하는 이태원 씨(57)는 “80대 할머니신데 ‘손자가 장애가 있는데 설 연휴 때 먹일 게 없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그랬다’라면서 ‘한 번만 살려달라’라고 울먹이시더라”고 말했다.

올 1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마트에서는 20대 여성이 6500원짜리 생리대 한 개를 훔치다 적발됐다. 마트 사장이 이유를 묻자, 여성은 “직장을 잃은 지 좀 됐고, 생리대를 살 돈이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지난해 11월 창원 진해구에선 암 투병 중인 자녀를 둔 50대 여성이 자식을 위해 마트에서 5만 원 상당의 소고기를 가방에 넣어 가져갔다가 경찰에 잡히기도 했다.무인점포 증가 역시 소액 절도 증가의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경찰 관계자는 “무인점포처럼 관리가 허술한 곳이 늘면서, 습관성 도벽을 가진 이들이 절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무인점포 증가로 인해 청소년 소액 절도 범죄가 늘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청소년들이 (훔친 물품을) 현금으로 빠르게 바꿀 수 있는 중고 거래 같은 플랫폼이 늘어나고, 관리자가 상시 대기하지 않는 무인점포도 증가했다”며 “이로 인해 순간의 유혹에 빠지기 쉬워졌고, 친구들과 놀이 삼아 소액 절도를 저지르게 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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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액 범죄 유형별 맞춤형 대응 필요”

전문가들은 소액 절도 범죄는 생계형인 경우가 많지만, 엄연히 범죄인 만큼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단순히 범죄로 대응하기보다는 사회 복지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생계형 범죄가 증가한다는 건 우리 사회가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반증한다”며 “생계형 범죄를 해결하려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채 의원도 “소액 범죄 증가는 경제 위기의 사회적 지표”라며 “국민의 기본권을 더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했다.

청소년 대상 소액 범죄에는 예방 중심의 제도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교수는 “청소년이 저지른 소액 범죄는 초범이 많은지, 재범이 많은지 등을 따져야 하고 재범이 많다면 소액 절도 범죄의 재범자에 대한 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액 절도 범죄의 기승에도 불구하고 경찰청은 현재 소액 범죄를 유형별로 나눠서 분석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소액 범죄의 원인이 다양해진 만큼, 정의와 유형을 명확히 하고 실태를 면밀히 파악해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조승연 기자 cho@donga.com
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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