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이 사라진다'...빠른공 시대에서 존재감 잃는 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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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5-07-15 오전 10:36:18

    수정 2025-07-15 오전 10:40:34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커브볼이 점차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AP통신은 15일(이하 한국시간) “MLB에서 커브볼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MLB에서 커브 구사 비율이 가장 높은 투수인 볼티모어 오리올스 찰리 모튼. 사진=AFPBBNews

AP통신에 따르면 MLB 전체 커브 비율은 2019년 10.7%에서 지난해 8.1%로 떨어졌다. 이는 MLB가 2008년 통계를 시작한 이후 최저치였다. 2019년과 비교해 2024년에는 무려 2만2962개나 커브 구사 횟수가 줄었다. 그나마 이번 시즌에는 8.5%로 약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구속 증가’가 자리하고 있다. 2008년 91.9마일(약 147.9km)이었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2024년 94.4마일(약 151.9km)로 크게 상승했다. 100마일(약 160.9km) 이상 투구도 2008년 214개에서 최근 3000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AP통신은 “나이키의 유명 광고 문구 ‘Chicks Dig the Long Ball(여자들은 홈런을 좋아해)’가 스테로이드 시대를 상징했다면, 지금은 ‘Velo Rules!(속도가 지배한다)’가 시대정신을 대변한다”고 소개했다.

커브볼은 야구 초창기부터 애용된 변화구다. 가장 느리면서도, 타자의 타이밍을 무너뜨리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MLB에서는 커브처럼 느리고 궤적이 큰 구종보다 더 빠르고 수평 무브먼트가 큰 슬라이더나 스위퍼가 인기를 끌고 있다.

탬파베이 투수 셰인 바즈는 “12-6 커브볼을 던지는 선수는 이제 드물다”며 “스위퍼가 훨씬 던지기 쉽고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19경기에 선발 등판해 8승 5패 평균자책점 4.17을 기록 중인 바즈는 전체 투구 중 커브 구사율이 28.1%로 높은 편이다. 이는 올 시즌 1000개 이상 공을 던진 투수 가운데 7위에 해당한다.

올 시즌 커브 구사율 1위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베테랑 투수 찰리 모튼으로 39%였다. 현재 MLB에서 가장 커브를 잘 던진다고 평가받는 클레이튼 커쇼(LA다저스)는 올 시즌 커브 비율이 17%였다

포심, 투심, 커터를 포함한 패스트볼의 구사율도 2008년 62.1%에서 지난해 55%로 하락했다. 대신 슬라이더, 스위퍼, 슬러브의 비중은 13.9%에서 22.6%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 시즌 커브의 피안타율은 0.225로 패스트볼의 0.263보다는 낮지만 슬라이더/스위퍼/슬러브의 0.222와는 오히려 높았다. 그렇다보니 투수들은 제구가 어려운 커브 보다 더 쉽고 편하게 던질 수 있는 변화구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오마르 미나야 뉴욕 양키스 수석 고문은 “요즘은 투구 능력보다 구속이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며 “쇼케이스나 스카우팅 현장에서 그런 경향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애슬레틱스 투수 코치 스콧 에머슨 역시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며 “선수들은 커브보다 수평 무브먼트가 큰 슬라이더나 스위퍼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커브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자 MLB 통산 145승을 기록한 캔디 커밍스는 1863년 14살 때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해변가에서 조개껍질을 던지다가 커브를 던지는 법을 발견했다는 것이 정설로 전해진다. 어떤 이들은 1870년 아마추어 투수 프레드 골드스미스가 커브볼을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커브는 샌디 코팩스, 놀란 라이언, 클레이튼 커쇼 등 MLB를 빛낸 전설적인 투수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오늘날 “커브볼을 던졌다(thrown a curveball)”는 표현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의미하는 관용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구속이 지배하는 시대에 맞춰 커브는 과거 유물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AP통신은 “오늘날에도 커브는 여전히 효과적이지만, 그 아름다움과 속임수의 기술은 점점 잊히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구종 변화가 아니라, 야구의 철학과 문화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라고 소개했다.

2008년부터 2025년까지 커브의 구사 비율 및 평균구속 변화. 표=MLB스탯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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