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끼리 구하다 사망…최악 산불이 보여준 지방의 현실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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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지난 25일 청송군까지 확산한 모습. /사진=독자 제공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지난 25일 청송군까지 확산한 모습. /사진=독자 제공

살고자 하는 사람도, 구하고자 하는 사람도, 죽은 사람도 노인이었다.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초유의 산불 사태는 늙어가는 지방의 실태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고령화에 대응해 재난 대응 체계 개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사망자 93%가 노인

31일 행정안전부와 산림청 등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사망한 30명 중 28명이 6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80대 13명, 60대 10명, 70대 3명, 90대 2명, 30대와 50대 각각 1명 순이다.

특히 노인이 노인을 구하다 변을 당한 경우도 상당수로 파악된다. 경북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 이장 부부는 주민들을 대피시키려다 지난 26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내외가 구조한 60대 처남도 결국 사망했다. 경북 의성에서 산불을 진화하다 헬기 추락으로 희생된 박현우 기장도 70대 노인이었다.

26일 오후 경북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 야산에 산불진화용 헬기가 추락해 당국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헬기 조종사는 사고 현장에서 사망 한 채 발견됐다. /사진=연합뉴스

26일 오후 경북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 야산에 산불진화용 헬기가 추락해 당국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헬기 조종사는 사고 현장에서 사망 한 채 발견됐다. /사진=연합뉴스

25일에는 경북 영덕에서 산불 진화 작업 중인 60대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전국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이 대부분 60대로 알려진 가운데, 경북의 경우 916명 중 60%가 6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한 지역 소방 관계자는 "지역은 재난 대응 인력도 고령화된 측면이 있다"면서 "그만큼 재난 대응의 핵심인 기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 경북은 고령화는 전국 2위·산불 피해는 1위

앞으로 시스템 개선이 없다면 이러한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에 우려가 제기된다. 평균 연령대가 전국 평균(45.4세)보다 높은 지역은 대체로 도시가 아닌 지자체에 해당한다. 이번 산불 피해가 발생한 경북의 평균 연령은 48.8세로 전남(49.2세)에 이어 전국에서 2번째로 높다. 도와 같이 산간 지역에 인구 분산도가 높으면서 고령화된 지역일수록 재난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도시가 아닌 지방자치단체 평균 연령이 더 높아 지방의 고령화 속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산불이 발생한 경북은 전국 2위로 나타났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한국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도시가 아닌 지방자치단체 평균 연령이 더 높아 지방의 고령화 속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산불이 발생한 경북은 전국 2위로 나타났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경북이 10년간 연 평균 산불 발생 면적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경북이 10년간 연 평균 산불 발생 면적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프=신현보 기자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연 평균 산불 발생 면적은 경북이 2107ha로 가장 높았고, 이어 강원(1101ha), 충남(283ha), 경남(202ha), 전남(109ha) 등 상위 5개 지역은 모두 도에 해당했다. 특히 경북 지역의 경우 평균 연령은 최상위권이면서 산불 피해가 가장 많은 곳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대적인 체제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 "알림이 아니라 대피 체계 필요"

경북 의성군 산불이 청송군까지 확산한 모습. /사진=독자 제공

경북 의성군 산불이 청송군까지 확산한 모습. /사진=독자 제공

지방이 고령화되는 현실과 발맞추어 지자체 재난 대응 체계가 '개혁'에 가깝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재난 문자부터 시작되는 재난 대응 체계는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는 무용지물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지난 25일부터 전국 지자체가 시민들에게 보낸 산불 관련 재난 문자만 500건이 넘는다. 의성군에서 만난 70대 임모씨는 "하도 평상시에 쓸데없이 재난 문자 와서 난 자식들 시켜서 재난 문자 알림도 꺼놓은 상태였다"면서 "왔다 한들 제대로 보는 노인들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지금까지는 대피 명령을 얼마나 빨리 알리는 데 방점이 찍혔다"며 "이번 사태를 통해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니란 게 밝혀졌다. 이제는 내용을 알리는 것을 넘어 대피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갖춰야 할 필요성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신현보/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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