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꽃뿐이랴
눈물겹기야
어찌
새 잎뿐이랴
창궐하는 역병(疫病)
죄에서조차
푸른
미나리 내음 난다
긴 봄날엔……
섧은 정부(情婦)
난쟁이 오랑캐꽃
외눈 뜨고 내다본다
긴 봄날엔……
―허영자(1938∼ )
10년 전 이 칼럼을 처음 맡았을 때 작은 텃밭의 관리자가 됐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꽃씨를 골라 심는 마음으로 시를 소개했다. 아무 댓글이 없어도 텃밭은 점점 더 소중해졌다. 행인이 잠시 꽃에 눈길을 주듯, 누군가 잠시 시에 머물다 지나가리라 생각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10년 전의 글을 보니 나는 김종삼을 좋아했다. 천상병과 김현승을 좋아했다. 그리고 허영자 시인을 좋아했다. 맑고 깨끗하고 고고하고 따뜻한 시인을 좋아했다. 좋아하던 그 마음으로 10년 만에 다시 허영자 시인의 시를 소개한다. ‘어여쁜 것이 어찌 꽃뿐이랴’는 말은 사람이 어여쁘다는 것이다. 당신이 어여쁘다는 말이다. ‘눈물겨운 것이 어찌 잎뿐이랴’는 말은 사람이 눈물겹다는 것이다. 당신과 당신의 삶이 눈물겹다는 말이다. 병이 기승을 부려도 미나리 냄새가 난다는 것은 그래도 살아보자는 말이다. 어여쁘니까 살자. 눈물겨우니까 살자. 서럽고 힘든 이유는 모르겠지만 봄날을 살아내자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건 텃밭의 응원가다. 나의 응원가, 우리의 응원가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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