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공시는 회사가 하고 싶은 말만 쓰는 공간이 아니다. 회사가 말하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시장에 설명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한다. 상장사의 공시는 홍보자료가 아니라 투자자가 위험을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든 최소한의 장치이고 약속이다. 좋은 소식은 크게 알리고, 불리한 정보는 회사와 이해관계자만 알고 있다면 국내 자본시장은 더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서진시스템 취재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회사의 주요 종속회사인 베트남 생산법인에서 1000억원대 세금 리스크가 발생했고,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오너이자 대표이사가 현지에서 장기간 출국금지를 당한 상황이었다면 주주는 이를 알 권리가 있지 않은가. 회사가 이의신청 중이고 환급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오히려 그 사실을 투명하게 시장에 설명했어야 한다. 회사가 문제없다고 보는 것과 투자자가 리스크를 알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리스크가 공개되지 않은 사이 거액의 자금 거래가 이어졌다. 서진시스템은 유상증자와 대규모 자본성 조달을 추진했고, 주가는 급등했다. 주요 임원들은 주가가 치솟는 사이 보유 주식을 매각했고, 최대주주인 대표이사 역시 증권사와의 자금조달 딜에 추가 계약까지 더해 주가 상승에 따른 거액의 차익을 얻어냈다. 유상증자에 참여한 주요 주주들이 관련 리스크를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도 드러났다. 회사 대표는 유상증자 참여 주주에게는 세금 리스크를 알렸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일반 주주에게는 설명하지 않았나. 회사와 최대주주, 일부 금융기관은 자금 흐름과 리스크를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일반 투자자는 공시와 보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상장사는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주주는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돈을 맡긴다. 그렇다면 회사는 성장의 가능성뿐 아니라 그 성장을 흔들 수 있는 리스크도 함께 설명해야 한다. 대규모 소송이 제기되면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 소송이 제기됐을 때 바로 공시하는 이유도 같다. 회사가 아무리 승소를 자신하더라도 소송 제기 사실과 청구 규모는 투자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다. 세금 리스크도 다르지 않다. 1000억원대 세금 납부 명령을 받았다면, 이의신청 여부와 별개로 회사의 재무·유동성·사업 리스크로 평가될 수 있다. 당연히 주주와 시장에 알렸어야 했다.
취재 과정에서 국내 공시 감독 체계의 빈틈도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서진시스템의 1000억원대 세무 리스크를 정기보고서에 기재해 공시했어야 할 사안으로 보고 사실관계 조사에 나섰지만, 한국거래소는 종속회사 세금 리스크가 수시공시 열거 항목에 없다는 부실한 판단에 머물렀다. 불성실공시를 감시해야 할 시장관리기관이 투자자 관점의 중요성보다 형식적 해당 여부만 따졌다가 제역할을 못한 셈이다. 회사가 숨기고, 거래소가 놓친 리스크는 결국 정보를 늦게 접한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공시 체계와 관리감독이 더 촘촘해져야 하는 이유다.
일부 주주에게 이런 보도가 불편할 수 있음을 안다. 기사 이후 "왜 하필 서진시스템을 다루느냐"는 항의성 메일도 적지 않게 받았다. 주가 하락을 우려하는 투자자 입장에서 회사의 리스크를 다루는 기사가 반갑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은 주가 방향을 예측하거나 회사의 장밋빛 전망을 옮기는 데 있지 않다. 시장에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은 정보가 있다면 이를 확인하고 묻는 것이 자본시장을 취재하는 기자의 역할이다. 금융당국이 모든 리스크를 적시에 파악할 수 없는 만큼, 감독의 손길이 늦게 닿는 곳에서 언론은 시장 감시 기능을 보완해야 한다.
자본시장은 숫자로 기업의 가치를 매기고, 그 숫자를 지탱하는 것은 신뢰다. 주가는 결국 시장이 어떤 정보를 알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투자자는 좋은 소식뿐 아니라 나쁜 소식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주식을 살지, 팔지, 기다릴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회사가 알리지 않은 리스크를 확인하고, 왜 공시하지 않았는지 묻고, 투자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빠져 있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일은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회사가 공시하지 않아서, 언론이 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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