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전쟁에 이어 지역은행 부실 우려까지.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사상 최고치 경신을 눈 앞에 뒀던 미국 증시에 변동성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이런 변수들에도 인공지능(AI) 혁명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 완화가 주도하는 구조적 강세장에 대한 기대는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습니다. 17일(현지시간) 3대 지수는 모두 반등에 성공했고 S&P 500 지수는 다시 사상 최고치 근처에 복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탄'이었던 미국 증시에도 짧게나마 국면 전환의 시점이 오는 모양새입니다. 지난 6개월 간 S&P 500은 무려 30% 올랐습니다. 일일 변동폭이 1% 미만인 거래일이 무려 33일 동안 이어지는, 역사적인 저(低)변동성도 동반됐습니다.
AI 관련주에 대한 낙관이 지나친 건 아닌지, 미국 경제의 체력은 정말 증시가 오르는 만큼 좋은 것인지, '걱정의 벽'을 타고 계속 오르는 증시를 바라보며 투자자들의 마음 속 불안의 싹이 자라고 있을 때 결국 변동성이 재등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에 대응해 대규모 관세 부과를 위협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고, 이어 또 미국 지역은행 위기설이 급부상했습니다. 혹여 뭔가 터지진 않을까 주변을 살피던 투자자들의 심리는 순식간에 흔들렸습니다.
지금 Fed '긴축 종료' 신호의 뜻
이렇게 많은 뉴스들로 시장이 혼란했던 일주일이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뉴스는 따로 있었습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지난 14일 "향후 몇 달 안에" 양적 긴축(QT)을 중단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입니다. Fed는 2022년부터 코로나 팬데믹 때 시행한 대규모 채권 매입을 되돌리기 위해 보유 자산을 축소하는 정책을 3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그것을 머지 않은 시점에 끝낼 수 있다며 전환점을 신호한 겁니다. 월가에선 벌써 양적 완화(QE) 기대까지 나옵니다.
왜 지금일까요? 파월 의장은 "레포 금리 상승, 특정 날짜에 일시적이지만 눈에 띄는 압박" 등 "유동성 상황이 점진적으로 긴축되고 있다는 일부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실제 최근 몇 주 간 단기 자금 시장의 스트레스 신호들이 늘어났습니다. 익일 담보부 금리(SOFR)·일반 레포금리(TGCR) 등 초단기 자금 시장 금리가 Fed 이자율(IORB·연방기금금리)보다 높아지고, 그 상태에서 스프레드가 점점 커지고 있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달러 유동성이 부족해지면서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는데도 급전이 필요한 시장 참가자들이 계속 단기 자금 시장에서 돈을 빌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돈은 넘쳐난다는데 단기 자금 시장에선 이렇게 달러 유동성 부족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수년간 지속된 QT로 은행 준비금 감소세가 이어지는 와중에 미 재무부가 단기 국채 발행을 늘리면서 민간 자금을 흡수하고 있는 게 기본적인 배경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최근 화폐 가치 하락에 대비해 금, 은, 주식, AI 관련 투자 등 현금 외 다양한 자산으로 대피하는 이른바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가 광범위하게 펼쳐지면서 그 거래의 매개체로서 달러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달러를 비롯한 종이돈에서 탈피해 다른 자산을 확보하려는 시장 참여자들의 쏠림이 오히려 달러 거래 수요를 늘려 유동성을 부족하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죠.
은행들이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져도 시장에서 차입을 늘리는 이유는 공급 요인도 있습니다. 이번주 실적을 공개한 JP모건과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는 일제히 3분기 예금 잔액을 월가 예상보다 낮게 발표했습니다. 기업 예금도 전년보다 줄었고, 개인 예금 감소세는 더 가팔랐습니다. JP모건에 따르면 미국 가계의 저축률이 낮아지고 소비가 늘어난데다, 예금 대신 주식이나 ETF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화폐가치와 이자율이 낮아지니 예금에 넣어두느니 다른 자산에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은행 입장에선 손쉽고 저렴한 자금 조달 수단인 예금이 줄어드는 결과가 됩니다.
대형은행들이 이렇다면 소규모 은행들은 사정이 훨씬 더 어렵겠죠. 미국 은행 준비금은 최근 들어 더 가파른 속도로 감소하며 3조 달러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2019년 레포시장 발작 사태, 2020년 코로나 당시,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모두 위기 발생 전 준비금이 급감하는 전조가 있었습니다.
파월 의장이 지금 이 시점에 QT 종료 시그널을 보낸 것은 이런 시장의 불안 심리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뿐 아니라 Fed와 미국 금융당국은 지역은행에 대한 자본 규제 완화도 준비 중입니다.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설마 이번에도' 위기가 반복될까봐 걱정하는 심리가 시장에 확산하면 이는 달러 유동성 부족을 심화시키고 금리는 또 치솟는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으니, 그 고리를 미연에 차단하겠다는 겁니다.
갑자기 부상한 '섀도우 뱅킹' 리스크
파월 의장이 지금 긴축 종료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사모대출, 부실 기업 대출 등 비은행 금융 기관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입니다. 겉보기엔 미국은 지금 신용시장 황금기지만, 10여년 간 과잉 유동성과 구조적 과열이 이어지면서 누적됐던 부실이 이제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최근 상당합니다.
지난달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 업체 트라이컬러와, 사모금융을 통해 월가에서 많은 부채를 조달했던 자동차 부품사 퍼스트브랜즈의 잇단 파산 신청이 직접적인 트리거가 됐습니다. JP모건, 제프리스, 피프스서드은행 등 다수 은행과 펀드들도 이 회사들의 채권과 투자에 각각 수억 달러 규모가 노출되어 있어 이미 손실을 반영한 상태입니다.
특히 트라이컬러는 저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소득·신용 정보를 허위로 기재하거나 하나의 자동차에 이중·삼중 담보를 잡는 등 사기성 행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대출 채권을 기반으로 자산 유동화 채권(ABS)을 발행해 대규모 유통됐는데, 이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구조입니다.
시장 참여자들 입장에선 이것이 개별 회사의 문제인지, 과거의 기억처럼 서브프라임 오토론 시장과 사모금융 시장 전반의 시스템적 위기 신호인지 알 수 없다는 불안한 심리가 자극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엔 대형 투자은행들이 깊이 엮여 있었지만, 이번엔 규제 밖에서 급성장해온 사모대출 시장으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사모신용 상장 펀드(BDC)들의 주가가 최근 한 달 이상 부진한 이유입니다. 이 사모신용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에 대한 건전성 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축소된 은행 대출의 빈 자리를 채우며 급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사모'의 특성상 투자 정보가 투명하지 않고 가격 평가도 외부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리스크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모든 게 좋을 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부실이 노출되기 시작하면 갑자기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문인 거죠.
다이먼의 '바퀴벌레 이론'과 지역은행 부실
이런 불안감을 더 자극한 것이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입니다. JP모건도 이번 트라이컬러 관련 손실로 1억7000만 달러를 상각했죠. 그는 지난 14일 실적 발표에서 이를 계기로 내부통제를 다시 검토하는 중이라면서 "(사모신용으로 자금을 대거 조달하고 파산한) 퍼스트브랜즈와 같은 사례를 몇 개 더 봤다. 바퀴벌레 한 마리를 봤다면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 '바퀴벌레 이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발언입니다. 당시 2007년 2월 HSBC가 서브프라임 대손 비용 증가를 경고하면서 시장 일부에서 '바퀴벌레의 첫 모습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간과됐고, 결국 시스템 붕괴로 이어졌죠.
다이먼은 "우린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신용 강세장을 누려왔는데, 그로 인해 일부 과잉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만약 경기침체가 온다면 신용 부실이 훨씬 더 많이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오랜 초저금리와 경제 성장 둔화 속에서 투자자들이 리스크 관리를 등한시하면서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좇아 공겨적으로 위험을 감수해온 대가가 이제 드러날 수 있다고 지적한 겁니다.
특히 BDC를 언급하면서 비은행 대출의 리스크가 더 크다고 암시했죠. 물론 미국 최대 은행 CEO로서 '문제는 우리가 아니다'라는 회피 기동의 목적도 있었을 겁니다. 사모신용 투자회사 블루아울캐피털의 립슐츠 CEO는 "바퀴벌레는 JP모건에서나 찾아봐야 할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사모신용이 아닌 은행들이 공개시장에서 유통한 신디케이트론과 ABS의 문제라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다이먼의 발언은 이미 취약해졌던 시장의 불안을 자극하기엔 충분했습니다. 여기에 16일 미국 내 자산 규모 30·31위의 소형 지역은행인 자이언, 웨스턴얼라이언스가 정말로 대출 부실로 인한 손실 처리를 발표하면서 '바퀴벌레 이론'이 증시를 뒤흔들게 된 것입니다.
강세장 근거는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장 취약해진 이유
미국 증시가 하루만에 반등한 데서 알 수 있듯, 월가는 이번 사건들이 2008년 금융위기나 2023년 SVB 사태같은 시스템적 금융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 유동성 스트레스에도 재할인창구, 상시레포대출기구 같은 Fed의 최종 대부자 시스템 이용은 유의미하게 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역은행이나 금융사들의 실적 발표에서도 은행 시스템 전반의 신용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조짐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하이일드채권과 투자등급채권 스프레드도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았고요. 2023년과 달리 지금은 금리 인하 환경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가장 결정적인 건 Fed가 또 한 번 해결사로 나설 의지를 이미 보여줬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시점에 양적 긴축 종료를 신호한 것 자체가 Fed가 이런 시장의 균열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SVB 사태 당시에도 Fed는 은행들이 보유 채권을 시가 손실 없이 담보로 맡기고 1년짜리 돈을 빌릴 수 있는 파격 조건의 BTFP를 한시 가동하면서 위기를 수습했었죠. 어떻게든 Fed가 나서줄 것이란 시장의 기대를 살려놓은 겁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미중 갈등 완화 발언, 성장 친화적 경제 정책, 기업들의 호실적, AI 투자 등 구조적 강세장을 뒷받침할 요인들은 아직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월가 대부분이 이번 조정이 단기 과열을 식히는 건전한 조정에 불과하며, 10월 말 미중 정상회담까지의 고비를 넘기면 연말 랠리가 다시 펼쳐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동성이 완전히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방탄'이었던 시장 심리가 이번 국면을 계기로 달라졌을까요?
JP모건은 지난 10여 년 동안 사실상 경기 침체 없이 위험자산 투자가 호황을 누려왔다 보니 투자자들이 개별 이벤트마다 "이게 트리거일 수 있다"는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허용하려는 한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그 결과 비정상적으로 올라갔던 리스크 자산 전반에 대한 가격이 정상화되면서 밸류에이션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미국 경제와 증시에 대한 낙관론이 유지되는 와중에도 당분간 변동성이 이어지고, 자금 흐름이 다소 보수적으로 바뀌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투자자들도 유의해야 합니다. Fed가 이미 '시장 구원' 의지를 나타내고, 증시 성과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11월 중간 선거를 준비할 이 시점에 과도한 공포에 젖어있을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위험 자산의 높은 밸류에이션을 허용해온 시장의 심리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엔 예민하게 레이더를 곤두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