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믿었다 '낭패'…소비자 피해 3년간 6배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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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OTA 피해]
2024년 6129억 달러, 2030년 1조 달러 돌파 전망
피해구제 신청 3년 새 6배 증가, 연말 2천건 예상
OTA 책임 회피에 소비자는 사각지대에 방치
국내 규제 강화 논의 본격화, 국제 공조 필요
“현명한 소비 선택이 시장 질서를 바꾸는 열쇠”

  • 등록 2025-09-03 오전 6:00:00

    수정 2025-09-03 오전 6:00:00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직장인 김모 씨(38)는 최근 동남아 여행을 일주일 앞두고 황당한 일을 겪었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 중개 플랫폼(OTA)을 통해 한 달 전 숙소를 예약하고 결제까지 마쳤지만 현지 리조트로부터 “예약 기록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해당 OTA 고객센터는 “리조트에 문의하라”며 책임을 떠넘겼고 리조트 측도 “환불은 OTA에 결제 여부를 확인한 뒤에야 가능하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김씨는 “전화와 메일로 OTA와 리조트 측에 예약, 결제 내역을 증명하고도 석 달가량이 지나서야 간신히 환불이 이뤄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중개 플랫폼(OTA) 국내 이용자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항공, 숙박, 체험 등 글로벌 영업망을 활용한 ‘원스톱’ 서비스에 글로벌 OTA 이용이 늘고 있지만 마땅한 소비자 보호 장치나 제도가 없어 피해 사례와 빈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버젓이 ‘무료 취소’ 문구를 단 상품도 환불을 거부하거나 예약이 누락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하지만 글로벌 OTA는 ‘우리는 중개자일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호텔·항공사도 ‘피해 보상, 환불은 OTA를 통해야 한다’며 시간 끌기로 일관하면서 소비자 피해와 불편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OTA가 국내 관련 법·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는 사이 이용자만 모든 피해를 떠안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25 K콘텐츠 서울여행주간을 맞아 열린 오징어게임 팝업 광화문 행사에서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단체줄넘기 게임을 즐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글로벌 OTA 이용자 피해 3년 새 6배 급증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OTA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2021년 241건에서 2024년 1422건으로 6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도 7월 말까지 1350건이 접수돼 연말에는 2000건을 넘어설 전망이다. 피해 플랫폼별로는 아고다가 2190건, 트립닷컴이 1266건, 에어비앤비 332건, 부킹닷컴 258건 순이었다.

문제는 피해에 대한 배상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접수된 글로벌 OTA 피해자 가운데 배상을 받은 경우는 단 6%에 불과했다. 글로벌 OTA 이용 피해자 100명 중 단 6명만 환불 등 보상 조치를 받았단 얘기다. 국내에서 피해 사례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해외 이용자가 더 많은 글로벌 OTA의 특성을 고려할 때 한국여행에 대한 불편과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슬기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는 OTA 브랜드를 믿고 예약하지만 실제 계약 상대는 호텔·항공사인 온라인 플랫폼의 구조적 허점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본사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는 점도 문제다. 야놀자, 여기어때 등 국내 OTA는 전자상거래법과 소비자보호법 적용을 받지만 글로벌 OTA는 본사 소재국 법률을 따르도록 돼있다. 최근 국내 이용자 피해가 급증한 아고다는 싱가포르, 트립닷컴은 중국 상하이, 에어비앤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킹닷컴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각각 본사가 있다. 국내 OTA의 경우 한국소비자원 중재로 피해 보상 등 해결이 가능하지만 글로벌 OTA는 자체 약관과 기준이 우선이다. 이인재 가천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는 글로벌 브랜드를 믿지만 문제가 생기면 국적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는 구조”라며 “사실상 역차별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국내 실정에 맞는 이용자 보호 장치가 미비한 상태이지만 글로벌 OTA의 시장 지배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6129억달러(약 822조 원)였던 글로벌 OTA 시장 규모는 올해 6637억달러(약 889조원)에 이어 2030년 1조달러(약 1340조 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세계 국제 관광객 총 지출액인 1조 9000억달러(약 2546억원)의 3분의 1에 버금가는 규모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세계여행관광협회(WTTC) 등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99% 수준인 14억 명을 회복한 국제 관광객이 2030년 18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랜드뷰리서치는 글로벌 OTA가 국제 관광 수요의 증가에 힘입어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8.6%씩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역차별 논란에도 관련 제도 도입은 지지부진

OTA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 기업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는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풍부한 자금력에 전 세계에 촘촘한 영업망을 갖춘 글로벌 OTA에 비해 상품 다양성과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국내 OTA가 더 엄격한 법 적용을 받고 있어서다. 국내 OTA를 비롯한 여행 업계에서 글로벌 OTA와의 경쟁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내 한 OTA 관계자는 “각종 법과 규제를 따르면서 글로벌 OTA의 물량 공세에 맞서 경쟁력을 키우기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치권 주도로 글로벌 OTA를 제도권 아래에 두기 위한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통상 마찰 우려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슬기 교수는 “소비자가 어디서 예약하든 동일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글로벌 OTA에도 국내 OTA와 동일한 기준에 따라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 상황에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온플법과 같은 제도 도입과 동시에 소비자 인식도 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환불, 보상 등에 소극적인 글로벌 OTA를 상대로 소비자 선택에 따라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법, 제도보다 소비자 선택이 더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연택 한국관광정책연구학회장은 “사후 관리에 충실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건 기업의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지만 소비자가 자신의 권익을 지키는 합리적 판단”이라며 “소비자의 행동 변화가 기업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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