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상 받은 소프라노...서덜랜드가 결혼 전 노래하는 '고맙습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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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스투펜다(La Stupenda). ‘놀라운 여자’, ‘경이로운 여성’이란 이태리 말이다. 별명이 La Divina/라 디비나(거룩한 여인, 신성한 여성)였던 마리아 칼라스보다는 아랫길이라 하더라도 엄청난 칭송이다.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Joan Sutherland, 1926~2010)가 주인공. 칼라스보다 3살 아래다.

조안 서덜랜드. / 사진. ⓒ Allan Warren/위키피디아

조안 서덜랜드. / 사진. ⓒ Allan Warren/위키피디아

1962년 36세 때 그래미상을 받음으로써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그녀는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검은 머리, 어두운 피부의 칼라스. 그 디바에 주눅 들어 뜻 모를 열패감에 젖었던 화이트 앵글로색슨 인에게 자부심을 허락했다고나 할까. 영국⸱미국⸱캐나다⸱호주 등지에서의 앨범과 티켓 파워는 자못 대단했다. 큰 키에 볼륨감 넘치는 체구, 늠름하고 장대한 이 소프라노를 사랑하지 않는 게 외려 이상한 일. 또한 서덜랜드는 네 살 연하인 남편 복(福)을 크게 입었다. 리처드 보닝(Richard Bonynge, 1930~). 동향인 호주 출신의 이 지휘자는 50여 편의 오페라 음반을 낸 극음악 전문가로 서덜랜드를 런던에서 만나 코칭한 인연으로 부부가 되었고 평생 해로했다. 2011년 아내와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재단(Joan Sutherland & Richard Bonynge Foundation)을 통해 지금까지도 후배 성악가를 발굴, 후원하고 있다.

조안 서덜랜드는 52세 때인 1978년 영국 왕실로부터 남성의 'Sir'에 해당하는 작위 '데임(Dame)'을 받는다. 1990년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위그노> 출연을 끝으로 공식 은퇴했으며 2010년 레만호가 보이는 스위스 레자방 자택에서 84세로 평화로이 죽었다. 주요 레퍼토리는 루치아⸱라트라비아타⸱몽유병여인⸱청교도⸱안나볼레나.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일 터. 주인공 엘레나의 아리아 ‘고맙습니다, 여러분(Merce, Dilette Amiche)’은 서덜랜드의 시그니처다.

1959년 33세 때 조안 서덜랜드가 녹음한 앨범 중에서 ‘고맙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예쁜 꽃을 주다니 사랑하는 친구들 고맙습니다/이 사랑스러운 선물은 성실한 여러분의 징표지요/사랑이 내게 준 이 행운의 결혼식에 여러분이 참석해준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이 선물 정말 고맙습니다/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꿈! 제 심장은 사랑으로 뛰고 있답니다/모든 감각을 취하게 만드는 천국의 공기를 들이마셨습니다/시칠리아의 해안에 평안이 깃들기를/우리들 마음에 더는 끔찍한 복수가 없기를/희망으로 가득 차고 마음의 상처는 잊혀지기를/내 기쁨의 날이 여러분에게도 영광의 날이 되기를/나는 아름다운 꽃을 선물로 받았습니다/그래요! 이것이야말로 사랑스러운 꿈이지요.”

엘레나는 프랑스 총독 몽포르테를 암살하려 한다. 한편 총독의 아들 아리고는 그녀를 흠모해 사랑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둘은 결혼하게 되나 예식에서 둘이 손을 맞잡는 순간, 종소리가 울리고 그 신호로 비극적 전투가 시작된다. 결혼식 직전 나오는 아리아다. 고음역에서의 재바른 민첩성과 중⸱저음역대에서의 풍성한 음색이 주특기인 서덜랜드에게 맞춤형이라고나 할까. 그녀가 구사하는 트릴과 비브라토는 화려함과 더불어 옹골찬 양감(量感)으로 곡을 곧추세운다.

로베르토 포코시가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1855)를 위해 그린 그림.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로베르토 포코시가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 기도>(1855)를 위해 그린 그림.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Les Vêpres Siciliennes)>는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22년에서야 국립오페라단이 성남아트센터에서 초연한 작품. 그러나 베르디의 국제적 작곡가로서의 이정표이자 정치·역사·개인의 드라마를 대규모 음악극으로 승화시킨 그랑도페라(Grand Opéra)의 수작으로 꼽힌다. 베르디의 후속작들 <운명의 힘>, <아이다>, <돈 카를로>로 나아가는 교량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1855년 파리 가극장에서 초연. 5막짜리 발레 포함 대작이다. 내용은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이 배경이다. 프랑스 지배 권력에 대한 시칠리아 민중들의 봉기를 다룬 것으로 억압받는 민중의 분노, 정의와 복수의 충돌, 사랑과 조국애 사이의 갈등을 그려냈다. 베르디는 이탈리아 민족의 단결과 독립을 염원하는 상징으로 여겨지며 61세 때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상원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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