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건희]문 앞에서 돌아선 가난한 청년들

1 day ago 5

조건희 사회부 차장 “죄송해요. 이때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서요.” 이모 씨(24)는 인터뷰 도중 말을 잇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건강보험료와 가스요금을 감당할 수 없던 지난해 말 얘기를 할 때였다. 우울감이 심해져 병원에 가려 했지만 진료비가 없었다. 고민 끝에 정신건강 지원을 신청하려 했다. 그런데 병원 진료 기록부터 있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그는 신청을 포기했다. 올 4월 취업에 성공해 스스로 돈을 번 뒤에야 병원 문을 열 수 있었다. 이 씨는 동아일보 ‘내일에서 밀려난 청년들’ 기획 시리즈 취재팀이 인터뷰한 청년 70여 명 가운데 한 명이다. 이 시리즈는 반도체 호황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청년 빈곤의 골이 오히려 깊어지는 실태를 파헤쳤다. 취업과 월세 부담, 빚의 굴레를 털어놓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니 총 39만 자, 책 2권 분량이었다.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지원 제도의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선 이들도 그중 하나다. 빚은 적잖은 빈곤 청년을 옥죄는 굴레다. 그런데 너무 급하게 갚아 오히려 구제받지 못한 청년도 있다. 카페를 운영하던 31세 청년은 매출이 급감하자 사채를 썼다. 하루 12∼14시간 배달을 뛰어 7개월 만에 2900만 원을 갚았지만 몸이 망가진 상태였다. 개인회생으로 빚을 덜기 위해 변호사와 법무사를 5명 넘게 찾아갔지만, 답은 같았다. “이제 와서 회생하기엔 너무 많이 갚았다.” 갚을 능력이 증명됐으니 깎아줄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원을 위해 무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의 학대를 피해 시설에서 자란 배모 씨(29)는 기초생활수급 신청 과정에서 부모의 재산을 증명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부모에게 사는 곳이 알려질 위험이 있었다. 그는 학대 사실을 입증하고서야 예외를 인정받았다. 가정폭력을 피해 독립한 한모 씨(32)는 복지기관을 스무 곳 넘게 찾았지만, 대다수가 홀몸노인이나 한부모 위주여서 지원 대상에 들지 못했다. 청년이 ‘가난을 증명하라’는 요구 앞에서 좌절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원 창구가 다 달라서다. 일자리는 고용센터, 월세는 주민센터, 빚은 신용회복위원회와 법원으로 가야 하는 식이다. 각자의 잣대만 들이대니 사정이 여러 겹인 청년은 어디서도 온전히 판단받지 못한다. 2014년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이 생겼고, 이재명 대통령도 신청주의를 “잔인한 제도”라고...

Read Entire Article




피플앤툴즈 네트워크
🛍 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