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규진]‘미국 눈에 띄지 말자’는 접근법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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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선이 확정됐을 즈음 정부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모델’이 회자됐다. 아베 전 일본 총리는 2016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해외 정상 중 처음으로 뉴욕 트럼프타워로 달려갔다. ‘트럼프의 푸들’이란 조롱에도 1기 내내 끈끈한 관계를 구축한 ‘아베 모델’은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우리가 따라가야 할 대미 전략으로 떠올랐다.

12·3 비상계엄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정부는 정상 간 통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대기업 채널까지 동원하는 총력전을 폈다. 하지만 일본과 인도,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이나 전화 통화를 갖는 동안 우리 정부의 정상 소통 시도는 무위에 그쳤다. 정부 내부에서 “트럼프 청구서를 받을 바에야 차라리 눈에 띄지 않는 게 낫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기류 변화의 이면엔 탄핵 정국 장기화 속에 자라난 대미 외교에 대한 무력감이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과 소통하려 하겠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한국 정치 상황이 한미일 3국 협력을 저해한다’는 취지의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후보자나 조지 글래스 주일 미국대사 후보자의 최근 청문회 발언을 그 징후로 봤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상 소통뿐만 아니라 고위급 소통까지 사실상 올스톱 됐다는 점이다. 얼마 전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첫 아시아 순방에서 일본과 필리핀 등만 방문했다. 17개 정보기관을 지휘하는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순방에도 한국은 빠졌다.

미 장관급 방한 ‘0건’이라는 수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던 2017년과도 대조적이다. 당시엔 2월부터 4월까지 매달 미 국방장관과 외교장관, 부통령이 한국을 찾아 안보와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코리아 패싱’이 심화된 건 미국의 우선순위가 달라진 데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된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정부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트럼프 2기는 장관급 방한에 긍정적인 기류였다. 헤그세스 장관 방한은 미국이 먼저 타진했고 이 과정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방한 가능성도 언급됐지만 결국 불발됐다고 한다. 한 당국자는 “방한을 성사시키고자 하는 한국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미국의 반응”이라고 했다. 정부 일각에선 빠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도 국방비 증액과 관세의 표적이 된 일본 사례를 들며 “소통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핵 능력 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표현하며 대화를 제안하고 있고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은 주한미군의 중국 견제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유연성 구상을 띄우고 있다. 안보와 통상을 망라한 트럼프 청구서가 한국에 언제 어떻게 날아올지 가늠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각급에서 긴밀한 소통 채널에 구축돼야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고, 문제가 터져도 신속하게 바로잡을 수 있다. ‘비공식 제보’를 받고도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 확인하는 데 열흘이나 걸린 ‘민감국가’ 지정 논란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대미 채널이 지금보다 더 견고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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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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