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언니를 만났다. 스무 살이나 많은 언니와는 각별했다. 부침 많은 유년을 보내고 일찍이 철들어 홀로 된 엄마의 어깨를 자처했던 언니와 나. 비슷한 삶을 살아온 언니는 내게 가엽단 말 대신 ‘장하다’고 말해주던 어른이었고, 나는 때때로 언니에게 기댔다.
한창 아이들을 키우던 언니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세 조카가 자라는 작은 집에는 밥 짓는 냄새가 났다. 눈길 닿는 데마다 아이들 흔적이 보이고, 잘 닦은 방바닥은 뜨뜻해서 졸음이 쏟아졌다. 언니가 차려준 밥상에서 반주를 마셨다. 기분 좋게 불콰해진 형부가 나를 칭찬했다. “우리 처제가 하여간 훌륭한 사람이야.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잘 웃고 잘 먹고, 하여간 뭐든지 잘하는 훌륭한 사람이라니까.” 언니야 대체 날 어떻게 얘기했길래. 형부의 터무니없는 칭찬 세례를 들으며 언니랑 키득거렸다. 언니는 다정한 사람을 만나서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사는구나. 행복은 밥 짓는 냄새로, 손때 묻은 생활감으로,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로 남았다.
이제 언니는 “애들을 다 떠나보내니 낼모레 환갑이더라”라며 헛헛하게 웃었다. 언니야 내가 쌍둥이 엄마가 됐는걸. 언니가 날 지그시 보더니 물었다. 어때, 행복하냐고. “수리야. 나는 행복하면 자꾸 울더라. 애들 키우면서 그렇게 몰래 울었다. 형부가 욕실에서 애들 씻겨주잖아. 욕실 밖으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나 혼자 문밖에서 울고 그랬어.”놀라서 언니를 봤다. “언니도? 나도 그래. 애들이 아빠랑 자기 전에 뒹굴뒹굴하면서 웃고 떠들잖아. 못 견디게 좋아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들릴 때. 그럴 때 언니야. 이런 행복이 나한테도 있다니. 그게 믿을 수 없어서 자꾸 혼자 울어.”
언니가 다 안다는 얼굴로 웃어주니까 눈물이 났다. “과분하지?” “진짜. 과분한 행복이야.” 고생스럽다 해도 열심히 살아보길 잘했지. 소맷부리로 눈물을 훔치다가 눈이 마주친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잘만 웃는 줄 알았더니 우리 울보였네. 훌쩍 울면서 힘껏 웃었다. 언니가 나를 안아주었다. 우리 수리 행복해졌구나. 나도 언니를 안아보았다. 우리 과분하게 행복하자. 그간 언니가 지어준 밥과 지켜봐준 마음과 위로해준 말들이 품 안에 뻐근하게 안겨 왔다.
언니야, 웃음은 겨울을 몰아내는 햇살 같은 거래. 우리에게 웃음은 혹독했던 인생의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 아니었을까. 우린 여전히 툭툭 잘 웃어. 그게 씩씩해서 좋은걸. 우리에게 온 과분한 행복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다 소중하다 웃으면서 만끽하자. 햇살은 반기는 사람의 몫. 웃으면 다 괜찮아질 거야. 겨울을 몰아내는 햇살같이.고수리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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