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 건물에 정글짐도 아니고…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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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장 건물에 정글짐도 아니고…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2]

입력 : 2026.06.27 07:12

[그거사전 - 103] 공사장 건물 둘러싼 정글짐 같은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건물을 빈틈없이 감싼 비계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공포영화 ‘헬레이저’의 악당 핀헤드 같기도 하지만. [Unspalsh/G-R Mottez]

건물을 빈틈없이 감싼 비계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공포영화 ‘헬레이저’의 악당 핀헤드 같기도 하지만. [Unspalsh/G-R Mottez]

명사. 1. (韓) 비계(飛階), 족장 2. (美) 스캐폴딩(scaffolding) 3. (日) 아시바(足場)【예문】땀 흘려 용돈 벌겠다고 호기롭게 나섰지만, 비계 위를 걷는 다리는 연신 후들거릴 뿐이었다.

비계다. 삼겹살 그 비계 아니다. 높은 건물을 지을 때 디디고 서서 외벽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나무나 철제 파이프를 엮어 만든 가설 발판이다. 건설 현장에서 공사 중인 건물을 둘러싼, 꼭 정글짐처럼 생긴 물건이다. 파이프만 딛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라 발판도 함께 설치한다.

날 비(飛)에 섬돌 계(階), 말 그대로 허공에 길을 만드는 공중 계단이란 뜻이다. 어라, 천국의 계단? 한자어라서 중국에서 온 표현일까 싶지만, 한국에서만 쓴다.¹ 영어로는 스캐폴딩², 일본어로는 아시바라고 한다. 일본어 잔재가 많이 남은 공사 현장에서는 아시바 혹은 한자를 그대로 읽어 족장(足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건물을 한 층 한 층 올리는 과정에서 비계도 쌓아 올린다. 건축 현장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물이면서, 공사가 끝나면 사라지는 쿨한 존재다. 해체할 때는 역순으로 위에서부터 분해한다. 쇠 파이프를 수작업으로 엮어 연결하는 강관 비계와 규격화된 부재를 짜 맞추는 조립식 시스템 비계로 나뉜다.

¹ 중국어로는 자오서우자(脚手架·jiǎoshǒujià)라고 한다. 발(脚)과 손(手)을 올려놓는 틀·받침대(架)로 풀이할 수 있겠다.    │     ² 스캐폴딩은 교수대·처형대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육 분야에서는 학습자에게 적절한 인지적 도움과 안내를 제공해 학습을 촉진시키는 전략을 의미하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스캐폴딩 교육 전략의 우리말 번역은 비계교수기법 되시겠다.

¹ 중국어로는 자오서우자(脚手架·jiǎoshǒujià)라고 한다. 발(脚)과 손(手)을 올려놓는 틀·받침대(架)로 풀이할 수 있겠다. │ ² 스캐폴딩은 교수대·처형대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육 분야에서는 학습자에게 적절한 인지적 도움과 안내를 제공해 학습을 촉진시키는 전략을 의미하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스캐폴딩 교육 전략의 우리말 번역은 비계교수기법 되시겠다.

2021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쉐라톤 팔레스호텔 철거 현장에서 시스템 비계가 붕괴했다. [연합뉴스]

2021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쉐라톤 팔레스호텔 철거 현장에서 시스템 비계가 붕괴했다. [연합뉴스]

고층 건물을 거미줄처럼 감싸며 올라가는 비계와, 그 안을 부지런히 오가는 작업자를 볼 때면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아찔하다. 기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위험하다. 2022년 상반기 건설업 사망사고 현황을 보면 건축·구조물 사망자 94명 중 비계·작업발판 관련 사망자 수가 22명으로, 가장 높은 사망사고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전년 같은 기간에는 전체 115명 중 38명, 33%에 달했다.³ 작업자의 안전대(안전띠)를 안전대걸이에 체결하고, 층별로 안전망을 설치하고, 대각선 방향으로 빗대 비계의 뒤틀림을 막고 보강하는 브레이싱(bracing)⁴까지 동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계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이동식 비계도 있다. 비계와 유사하게 생긴 이 장치 하부에는 바퀴가 달려 있어 설치·해체를 반복해야 하는 일반 비계보다 작업 속도가 빠르다. 2미터 내외의 이동식 비계 작업은 고위험작업으로 분류되지 않아 관리자 사전 허가 없이도 작업이 가능하다. 이 정도 높이는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한 작업자가 안전 난간이나 바퀴 고정 등 준수사항을 지키지 않고 작업하다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잦다. 추락 사고는 높은 곳에서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산업 재해 사례를 찾아보면 1미터 남짓한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³ 고용노동부 2022년 상반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자료.   │    ⁴ 가새라고도 한다.

³ 고용노동부 2022년 상반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자료. │ ⁴ 가새라고도 한다.

말비계. 사다리 옆에 튀어나온 더듬이 같은 건 비계가 쓰러지는 걸 방지하는 전도 방지대다. [사다리백화점]

말비계. 사다리 옆에 튀어나온 더듬이 같은 건 비계가 쓰러지는 걸 방지하는 전도 방지대다. [사다리백화점]

말비계는 캠핑용 테이블처럼 생긴 물건으로, 양쪽에 사다리가 설치된 작업 발판이다. 비교적 낮은 높이에서 작업할 때 사용한다. 생긴 모양새 때문에 우마(牛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층건출 옥상에서부터 줄을 내려 창문을 닦고 외벽을 도장하는 아찔한 작업을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이 역시 비계다. 땅이 아닌 옥상에서 시작하는 이 비계의 이름은 달비계, 말 그대로 위에서 달아 내린 비계를 의미한다. 나 홀로 공중 의자에 앉아 사용하는 작업의자형 달비계와 여러 명이 탑승할 수 있는 바구니 형태의 곤돌라형 달비계로 나뉜다. 톰 크루즈가 별거냐. 알렉스 호놀드⁵를 왜 찾나. 허공에 뜬 일엽편주 달비계에 몸을 맡긴 이들이 있다.

 초고층 빌딩을 오르다’에서 생방송으로 대만 타이페이 101 빌딩을 등반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

⁵ 미국 출신의 암벽 등반가.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올라가는 프리솔로 스타일로 유명하다. 넷플릭스 ‘스카이스크레이퍼 라이브: 초고층 빌딩을 오르다’에서 생방송으로 대만 타이페이 101 빌딩을 등반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

작업의자형 달비계에 앉아 고층건물 외벽을 청소하는 작업자들. [연합뉴스]

작업의자형 달비계에 앉아 고층건물 외벽을 청소하는 작업자들. [연합뉴스]

대나무 비계와 홍콩의 화양연화

어떤 비계는 무형문화유산으로 대접받기도 한다. 중화권에서 쓰는 대나무 비계(광둥어 발음 죽팡竹棚)다. 대나무 비계는 중국 건축 문화의 오랜 전통이자 트레이드 마크다. 마카오 문화국(Cultural Affairs Bureau)은 대나무 비계 기술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도 했다. 대부분 금속 비계로 대체한 중국 본토와 달리 홍콩에서는 아직도 정정한 현역이자 홍콩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대나무 비계로 감싼 은빛 마천루의 이질적인 조합은 홍콩하면 떠오르는 풍광이다.

대나무 비계는 금속에 비해 가볍고 설치·해체가 빠르며 비용도 저렴하다. 홍콩의 좁고 빽빽한 도심 환경, 특히 소금기를 머금은 해풍이 잦은 기후를 고려하면 대나무 비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홍콩의 한 보수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대나무 비계를 설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의 한 보수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대나무 비계를 설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나무 비계는 파리하게 명멸하다 이윽고 사라져 가는 홍콩다움이기도 하다. 2025년 홍콩 타이포구 왕푹코트 아파트 단지에서 리모델링 공사 도중 발생한 화재 사고는 168명이 사망하고 79명이 부상 당한 대형 참사였다. 1층에서 발화한 이후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지고, 결국 7개 건물이 잿더미로 변한 것을 두고, 공사 현장의 대나무 비계가 화재를 키운 불쏘시개로 지목됐다. 이에 홍콩 당국은 발 빠르게 대나무 비계를 금속 비계로 전면 교체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꽤 자연스러운 흐름 같지만, 상당수 홍콩 시민과 일부 전문가는 진짜 원인은 외면하고 애꿎은 대나무 비계만 탓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난연성 소재 대신 저렴한 가연성 그물망을 사용한 시공사, 화재경보기와 소화전은 작동하지 않고 스프링클러도 없는 부실한 건물 안전시설, 리모델링 사업의 비리 복마전을 묵과한 당국 등 재해를 키운 인재(人災) 요인은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대나무 비계도 그 자체로 수분을 머금고 있고 방염 처리를 충분히 해둔 덕에 어느 정도 불길을 견딜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6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 왕푹 코트 아파트 외벽을 둘러싼 죽팡(대나무 비계)가 불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 왕푹 코트 아파트 외벽을 둘러싼 죽팡(대나무 비계)가 불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한발 더 나아가 홍콩 당국의 대나무 비계 퇴출 발표 역시 중국 중앙정부가 추진해온 ‘홍콩 정체성 지우기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는 과격한 해석도 내놨다. 그저 건설 현장의 시설물 그것도 완공과 함께 사라질 운명의 대나무 비계에 너무 이입한 건 아닌가 싶지만, 더 들여다보면 그 함의는 깊고 씁쓸하다.

홍콩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지워지고 있다. 155년의 분리는 홍콩을 중국 본토와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로 만들었다. 동양적 뿌리는 공유하되 서구적 시스템을 융합해 다른 방향과 속도로 성장한 홍콩은 그 과정에서 홍콩다움·홍콩인이란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중국공산당은 50년간 일국양제(一國兩制)⁶를 인정하기로 했지만, 갈등과 불가해(不可解)의 골은 날이 갈수록 더 깊어졌다. 2014년과 2019년 홍콩인들의 대규모 반중·민주화 시위,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거치며 반감은 더 거칠어졌다.

일련의 과정에서 중국 당국은 홍콩다움을 지우는 전략을 택했다. 우선 홍콩인들에게 광둥어(广东话) 대신 표준 중국어 를 사용할 것으로 강요했다. 2023년 홍콩 국가보안 경찰이 광둥어 보호운동 단체인 항어학협회의 협회장 앤드루 찬(Andrew Chan·30)의 자택을 급습했다. 경찰이 요구한 것은 단 하나. 협회 웹사이트에 업로드 한 광둥어 단편소설 한 편을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독재정권이 지운 홍콩의 역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는 청년의 이야기였다. 이후 협회는 해산됐다.

⁶ 하나의 국가 안에서 두 가지 경제·정치체제가 공존하는 형태.

⁶ 하나의 국가 안에서 두 가지 경제·정치체제가 공존하는 형태.

2010년 베이징 중앙정부가 보통화를 강요할 때 홍콩에서 “나는 광둥어를 사랑해요, 나는 보통화를 몰라요”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시민. [사우스차이나모니포스트]

2010년 베이징 중앙정부가 보통화를 강요할 때 홍콩에서 “나는 광둥어를 사랑해요, 나는 보통화를 몰라요”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시민. [사우스차이나모니포스트]

표준 중국어와 광둥어는 한자어를 문자로 쓸 뿐, 방언 수준을 넘어 사실상 다른 언어로 봐야 할 정도다. 예를 들어 두 언어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지표 중에는 기초단어의 어휘적 유사성(LSI·Lexical Similarity Index)이 있는데, 영어와 독일어의 유사성은 60% 수준이다. 85%에 달하면 같은 언어의 방언 계열로 본다. 베이징어와 광둥어의 유사성은 24%에 불과하다. 이는 영어와 러시아어 혹은 영어와 프랑스어 수준의 차이다.

중국은 홍콩 밤거리를 상징했던 네온사인 간판도 끌어 내렸다. 시각 공해와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운 홍콩 당국은 2006년부터 무허가 간판을 1년에 3000개씩 철거했다. 2011년 건물 외부 구조물에 관한 조례 기준을 강화했고 2013년 건축물 간판에 대한 검증 제도를 도입했다. LED 조명의 보급도 네온사인의 멸종을 가속했다. 한때 홍콩 전역에 12만개 넘게 있었던 화려한 간판⁷은 이제 500개도 채 남지 않았다.

광둥어, 네온사인, 그리고 대나무 비계에 이르기까지, 홍콩다움을 규정하던 것들이 하나둘씩 지워지고 있다. 어떤 사물은 과분하게도 한 시대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법이다. 그래서 그 물건이 쓸모를 다해 퇴장할 때면, 마치 당신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 화양연화(花樣年華)도 이제 끝낼 때가 됐다는 말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어떤 홍콩인들이 대나무 비계에 마음을 쏟는 것은 이런 이유다.

⁷ 2011년 홍콩 당국 조사. 네온 사인을 포함한 옥외 간판 갯수 기준.

⁷ 2011년 홍콩 당국 조사. 네온 사인을 포함한 옥외 간판 갯수 기준.

홍콩 네이선로드(Nathan Road)의 밤거리. [게티이미지뱅크]

홍콩 네이선로드(Nathan Road)의 밤거리. [게티이미지뱅크]

비계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신 이상규·이용건 매일경제 기자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 예고 : 에스컬레이터 옆에 붙어있는 털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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