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우 논란에 … 주목받는 국회 보좌진의 세계
정부부처 공무원에겐 甲
마치 300개 中企같은 분위기
근속기간 5년 미만이 60%
"동지적 관계는 옛말" 한숨
인사권 쥔 의원들에겐 乙
공항서 컵라면 대령 지시까지
기피하는 의원 블랙리스트도
여의도 떠나 기업 대관업무行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보좌진 갑질 의혹' 파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회 보좌진의 세계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법률과 예산을 통과시키는 국회에서 일하기 때문에 정부부처, 공공·민간기업에 보좌진의 위치는 '갑'이다. 동시에 공무원 신분이지만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별정직이다 보니 사실상 인사권을 쥔 의원에겐 '을'이다. 예전에는 선출직에 대한 꿈을 갖고 보좌진에 입문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최근엔 입법 전문가로 성장하거나 국회 경력을 바탕으로 민간기업 진출을 기대하는 보좌진이 늘어나는 추세다.
15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300명의 의원은 의원실마다 총 8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4급 보좌관과 5급 선임비서관을 2명씩, 6~9급 비서관은 1명씩 둘 수 있다. 여기에 추가로 인턴 비서관과 무급 형태의 입법보조원도 둘 수 있다. 4급 보좌관 급여는 연봉 9000만원대로, 기업과 비교해서 나쁘다고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국회 보좌진 직 자체는 매력적인 직업으로 평가를 받는다. 한 중진 의원실 보좌관은 "입법권이라는 힘을 통해 사회를 진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직업인 만큼 스스로도 전문성을 더 갖추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30대 보좌진은 "2030세대로서 급여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공적인 역할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젊을 때 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의원회관 내 300개 중소기업이 존재한다'는 말처럼 어느 의원과 일하느냐에 따라 보좌진의 생활도 달라진다는 점이 가장 큰 불안 요소다. 절차상 채용·해고 권한이 4~5급 보좌진은 국회 의장, 6~9급은 국회 사무총장에게 있지만, 이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고 실제 인사권은 의원이 갖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의원 지시가 부당하게 느껴지더라도 보좌진이 거부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강 후보자 갑질 논란이 불거지고 전날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던 전현직 보좌진이 착잡한 심정을 드러낸 것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어서다. 초선 의원실의 한 비서관은 "좋은 정책과 법안을 통해 의원, 당, 국가 발전에 헌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면 의원 주변엔 간신만 남고 한국 정치도 퇴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인권·민주주의·사회적 약자 보호를 강조하는 더불어민주당에서 김병기 원내대표 등 일부 의원이 보인 언행에 대해 당을 떠나 "실망스럽다"는 보좌진의 반응이 많았다. "청문회에서 사과했으니 충분하다"는 식의 대응에도 싸늘한 반응들이다.
한 민주당 보좌관은 "동료 의원, 지역 유권자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보좌진에게도 좋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며 "많은 보좌진이 거쳐 간 방에서 모셨던 의원에게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얘기하는 전직 보좌진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냐"고 반문했다.
보좌진 출신인 김성열 개혁신당 최고위원 후보도 "민주당은 늘 '임금체불은 살인'이라고 말했는데, 그 당사자를 장관으로 삼겠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라며 "쓰레기 처리, 비데 수리, 취업 방해 등 그 외의 의혹도 질이 너무 나쁘다. 정말 요즘 찾아보기 힘든 악덕 고용주의 표본"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국회에는 보좌진이 기피하는 '블랙리스트 의원실'이 있다. 선수·성별·과거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보면 조심해야 할 비슷한 유형의 의원이 늘 존재한다고 귀띔한다. 민주당 의원실의 한 선임비서관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걸러야 하는 의원실이 있다"며 "어쩔 수 없이 가더라도 결국 얼마 못 버티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매일경제 취재에 보좌진은 다양한 유형의 의원 갑질 사례를 전해줬다. 밤 10시 넘어서 지역구민에 대한 정보를 확인해 새벽에 보고하라는 식의 부당한 지시를 비롯해 배우자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을 돌게 하고, 휴가지에 동행하게 해 바비큐를 시키거나, 자녀 학원 라이딩을 시키는 오래된 유형의 악행도 여전했다.
재선 의원실 한 보좌진은 "커다란 봉지에 든 1㎏짜리 땅콩을 시장에서 사 와 본인이 돌아오기 전까지 다 까놓으라고 지시한 사례도 들었다"고 전했다. 10년 넘게 국회 생활을 했던 전직 보좌진은 "비행기 이륙 7분 전 공항에 도착했는데, 라면이 먹고 싶다며 컵라면을 끓여오라고 한 의원이 있었다"고 밝혔다.
물론 보좌진도 현실 정치의 일원으로서 타 직업군과 다른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선거, 국정감사 등 시기에 업무 강도가 강해지는 것은 보좌진을 택한 데 대한 숙명이라고 본다. 다만 평시에도 주중에는 여의도, 주말에는 지역구 근무처럼 주7일 근무를 강요하는 사례가 있다.
강 후보자가 지역과 의원회관 보좌진을 구분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두고도 비판이 나온다. 야당 출신 한 전직 보좌관은 "지역구 관리는 몸으로 부딪히는 일이 많다 보니 회관에 비해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관점이 무의식적으로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구의원·시의원 공천권을 지역구 의원이 행사하다 보니 이를 무기로 이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서로 충성 경쟁을 시키는 경우도 존재한다.
보좌진은 공천 과정에서 자신들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의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낙천인 만큼 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천을 신청한 전현직 의원에 대해 보좌진의 다면평가 등을 예시로 거론했다.
또 최근에는 주요 기업이 대관 업무를 강화하고 있어 언제든 여의도를 떠나겠다고 생각하는 보좌진이 늘고 있다. 여당 또는 다수당일 때 조건만 맞는다면 체계가 갖춰진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게 의원실보다 더 낫다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민간에 진출한 전직 인사는 "유능한 보좌진이 자꾸 민간으로 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입법부의 역량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채종원 기자 / 구정근 기자 / 김명환 기자]